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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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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26대 성왕, 목이 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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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대 성왕

지식이 영매하고, 결단력이 있고, 천도지리에 통달하였고….. 아무튼 똑똑하였던 모양이다.
부왕 무령왕의 뒤를 이어 백제의 부흥기를 이끌었으며,
공주에서 부여로 수도를 옮겨 사비시대를 열었고,
국호를 일시 남부여로 고쳐 부여와 연계를 강조하였다.

성 뺐기고, 왕 죽고, 강제로 쫓겨나, 죽지 못해 옮길 수밖에 없었던, 치욕스러웠던 웅진 천도와는 달리,
사비 천도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기획된 천도이며 왕권 강화의 마무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성왕은 천도를 전후하여 내외관제를 16관등 22부제로 정비하였고, 종래의 담로제를 5방·군·성(현)제로 개편하는 등의 개혁을 통하여, 귀족회의체의 정치적 발언권을 약화시키고 왕권중심의 정치운영체제를 확립하였다.

불교에도 심취하여 경전을 수입하고 불교 교단을 정비하였으며 일본에 노리사치계를 보내어 불교를 전해주었다.
성왕의 고구려쪽 파트너는 안장왕이었는데, 여전히 강대한 무력을 보유한 고구려를 백제 단독으로 막아내기에는 무리였으므로,
전대부터 유지되어 온 신라와의 동맹관계를 그대로 지속하여 고구려의 남진 압력에 대항하였고,
양, 왜 등과도 외교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백제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551년 백제군을 주축으로 하는 신라, 가야 삼개 국 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하였는데, 그 결과, 백제는 한강 하류의 6군을 회복하였고, 신라는 한강 상류의 10군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사비회의를 통해 가야연맹을 영향권 안에 넣기 시작했으며, 가야연맹의 강자 안로국을 무력화시켰다.
오랜만에 보는 호호탕탕한 백제의 모습이었는데, 아쉽게도 여기까지였다.
어렵게 회복한 한강 하류 유역을 신라에게 빼앗기고만 것이다.

신라에 복수를 다짐한 성왕은 553년 딸을 신라 왕실에 시집보내 신라의 이목을 가린 후 554년 가야와 연합하여 신라를 쳤다.
싸움은 초반전에는 백제가 유리하였으나, 관산성 싸움에서 성왕이 복병에게 사로잡혀 목이 잘리면서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백제로서는 참으로 어이없고 아쉬운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고구려에게 목이 잘린 개로왕은 무력의 현저한 차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불행의 성격이 강하였으나, 신라에 목이 잘린 성왕은 불운이었다.
불행이든 불운이든 기구한 백제의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성왕의 불운은 전쟁의 패전으로 이어졌고, 
패전의 결과 백제의 정치는 기껏 확립했던 왕권중심체제에서 귀족중심체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1세기 이상 지속되었던 나제동맹은 당연히 완전히 깨어졌고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아신왕이 광개토대왕이라는 천적으로 인해 좌절한 것처럼,
성왕 또한 우리 역사 상 또 하나의 영명한 군주인 진흥왕을 만나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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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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