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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0일 (토요일) 9:55 오전
오피니언사설/칼럼신라 : 4대 탈해 이사금, 또 하나의 시조

신라 : 4대 탈해 이사금, 또 하나의 시조

석씨 왕조의 시작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양반은 왜의 동북쪽 1천 리에 위치한 다파나국 출신이라고 한다.
다파나국의 현재 위치는 일본 오키 제도, 인도 타밀 등 여러 설이 분분한데,
캄차카 반도 어디쯤이 아니었을까?

한 왕조의 시조답게 신화가 많다.
석탈해의 생모되시는 다파나국의 왕비가 임신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는데,
이 이야기는 7년간 불륜을 이어오다가 덜컥 임신하여 애를 낳았다는 것이고,
바람피운 여자의 본 남편인 그 동네 왕이, 사람이 알을 낳는 일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 알을 버릴 것을 명했다…..는 것은,
외척의 세력이 막강하여 마누라는 처벌 못하니, 애라도 내다 버려라…란 뜻일 것이다.
왕비는 비단으로 알과 보물을 싸맨 뒤 궤 속에 넣어 바다로 떠나 보내야 했고,
이 궤짝은 바다를 표류하다가 금관가야의 바닷가에 닿았으나, 가야인들은 이를 괴이하게 여겨 건지지 않았는데,
진한 아진포  어구에 이르러 비로소 웬 할머니의 구함을 받았다고 한다.
이 할머니가 궤짝을 건져 낼 때 까치가 많아, 까치 작(鵲)자에서 새조를 떼어낸 옛 석(昔)자를 성씨로 삼았고,
궤짝을 풀어 헤쳤다 하여 탈해로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유식하기도 하다.
탈해는 노파를 어머니로 모시고 살며 고기잡이로 봉양하다가, 노모의 말을 좇아 학문에 정진하고 지리를 익혔다….는데, 학문이야 그렇다지만 웬 지리?

다른 설에는 꿰짝을 열자 보물, 노비와 함께 웬 애가 튀어나와  용성국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고,
토함산의 돌무덤으로 들어가 7일간 머물렀다고 한다.

이 설이든 저 설이든, 아무튼 이 궤짝에서 나온 놈이 양산의 호공 집을 탐내었고,
집 주변에 숯과 숫돌을 묻어 놓고 자기 집이라고 우기는 사기를 쳐서 빼앗았다는데,
표주박을 타고 동해를 건너고, 마한에 사신으로 가서는 왕에게 개길 정도의 만만찮은 인물인 호공이,
이 정도 사기에 살던 집을 빼앗기고 순순히 물러났다는 게 뜨악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치고,
이게 훗날 월성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궤짝에서 나와 유식한 할머니의 손에 키워진게 아니라, 성인인 상태로 금관가야에 먼저 도착했었는데, 
김수로왕과 왕국을 놓고 술법대결을 펼치다 지는 바람에 신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동물의 왕국 스타일의 쫒고 쫒기는, 술래잡기 비슷한 술법 대결 이야기만 빼면,
이 설이 가장 그럴 듯하다.

어쨌든 20대 초반인 서기 8년에 남해왕의 사위가 되었고,
2년 뒤 서기 10년에 대보로 등용되어 정사를 맡았으며,
이빨 자국 내기에 져 유리왕에게 왕위를 양보한 후에도 권력의 중심에 있었고,
유리왕의 치세 후반기에 대리청정을 맡았다.

서기 57년 유리 이사금의 유언에 따라 이사금이 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76세… 말을 말자.
즉위 이듬해에 사기의 희생자 호공을 대보로 삼았다…는데, 미안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뭔가 속사정이 있었을 듯하다 .
즉위 3년 차인 59년, 왜와 수교하였으며,
61년엔 마한의 장수 맹소가 복암성을 바치고 항복했고, 그 이후엔 백제와 계속 치고 받았다….는 데,
경주 땅을 벗어나지도 못한 소국 주제에 그 먼데 있는 강국 백제와? 뻥일 것이다.

65년, 시림에서 김알지를 얻어 사위로 삼았고, 시림을 계림으로 개칭한 것으로도 모자라 계림을 아예 국호로 삼았다.
모든 김씨들의 조상 김알지의 등장인데, 사위로 삼고 국호를 바꾸었다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세력의 중심인물이을 것이다.

73년에는 왜구의 침입이 있었고,
77년에는 가야 군과 싸워 크게 이겼다.
79년에는 울산 울주구, 부산 동래구에 해당하는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병합하였다.
재위 24년 만인 80년 사망하여 성 북쪽의 양정구에 장사 지냈다.
100세까지 살았다는 이야기인데… 그냥 그러려니 하자.

석씨들은 탈해 이사금을 두목으로 하는, 해양으로 들어온 외래 세력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왜구, 가야 등 침입자들과 싸우는 한편 왜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김알지 등 다른 외부 세력과도 제휴하는 등,
동분서주하여 신라 주류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일생이 비록 허구적인 신화들로 가득차 있으나, 진실이 무엇이든,
석탈해 이사금 또한 자기 시대를 최선을 다해 살다간 전형적인 신라인이었다.

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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