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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9일 (금요일) 1:44 오후
오피니언사설/칼럼후백제 : 견훤(2), 난세라는 꿈

후백제 : 견훤(2), 난세라는 꿈

난세.
사람 사는 세상이 언제인들 난세가 아니겠냐마는,
우리 역사에서 전국시대를 의미하는 난세는 흔치 않다.
삼국 초창기를 제외하면 후삼국시대가 유일할 것이다.

견훤은 이 난세를 온몸으로 살아간 진정한 호걸이자 영웅이었다.
견훤이 몸을 일으킨 진성여왕 시기는 신라의 모순이 극대화되어,
기존 권위가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시기였다.
이러한 현실은 필연적으로 혼란을 불렀고, 능력 있는 야심가들을 들뜨게 만드는 토양이 되었으므로,
각지의 힘깨나 쓰는 호족들은 모두가 영웅호걸을 자처하였고,
눈 먼 천명이 자신에게 임하기를 염원하였으나,
대다수의 민초들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견훤이 무역의 요충이자 곡창지대가 인접해 있는 서남해에 근무하게 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운이었다.
첫 출발은 쉽지 않았으나,
난세였으므로 곧 그의 능력과 영웅적인 면모는 빛을 발하였고, 보호자를 필요로 하던 민초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백제를 계승하겠다는 다소 생뚱맞은 명분은,
삼국통일 이후 옛 백제 땅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구려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곡창지대의 주민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을 것인데, 
이는 민심을 모아 창업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나, 그로인한 한계 또한 지니게 되었다.

아버지 아자개, 양길 등 각지의 호족 내지는 도적들과 함께 난세 1세대를 형성한 견훤은,
다른 동기들이 부침을 거듭할 때, 전라도 지역을 장악하고 왕을 칭하는 등 선두를 치고 나가,
마치 그대로 천하를 접수할 것만 같은 기세였다.
그러나 그랬더라면 후세에 난세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난세를 난세답게 만든 또 다른 영웅 궁예가 등장한 것이다.
이로써 삼국이 정립되었으며, 본격적인 쟁패에 돌입하였는데,
곡창지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무장의 카리스마를 지닌 견훤과,
신라의 버림받은 왕자라는 다소 로맨틱한 출신 배경과, 세기말적 광신에 기반한 교주의 카리스마를 갖춘 궁예의 싸움은 호각이었고, 전국시대를 활짝 꽃 피웠다.

궁예는 견훤과 여러 면에서 달랐으나 군사적 능력만큼은 견훤에게 전혀 뒤지질 않아,
나주 점령이라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며 밀리던 전황을 뒤집고 우세를 확보하였다.
나주 상실로 인해 견훤이 받은 타격은 엄청났는데,
나주라는 지역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지정학적인 이점의 상실뿐만 아니라,
배후에 독 오른 적을 남겨둠으로써 전력을 한 곳에 모으지 못하고 항상 두개의 전선을 유지해야 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게 된 것이 가장 뼈아팠다.
창업 초창기에 나주지역의 호족들을 회유하지 못하고, 강제 복속한 것이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궁예.
참으로 사나운 중이었다. 
이 중 같지 않은 중과의 싸움이 점입가경을 치달을 때,
왕건이라는 또 다른 걸출한 인물에게 궁예가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난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왕건과도 서로 펀치를 주고받으며 쟁패를 이어갔으나,
궁예보다는 아무래도 좀 편했는지 견훤은 다시 우위에 설 수 있었고, 신라를 속국화하며 절정에 올랐다.
그러나 이놈의 눈 먼 천명이 이번에는 왕건을 찾아갔는지,
뜻밖에 아들들의 반란을 만났고, 이 패륜에 대한 분노는 영웅을 필부보다 못하게 만들었다.
견훤은 아버지 아자개가 자신을 버리고 왕건에게 간 것처럼, 아들을 버리고 왕건에게 투신하였으며,
왕건 군의 선두에 서서 아들을 치는 기막힌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이미 병든 70 객이었으니 무용이야 보잘 것 없었을 것이나, 카리스마는 여전해서, 
그를 마주 대한 후백제군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도망자가 속출하였다고 한다.
이 지경이니 싸움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그저 평범한 재능밖에 없었던 아들 신검은 속절없이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라가 망하였다.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아들의 한심한 작태는 병든 노인을 더욱 절망하게 하였고,
죽음으로 이끌었다.
견훤은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져 독살 당한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독살이건 뭐건,
평생 자기 손으로 세운 나라를, 자기 손으로 부숴버린 꼴이 된 견훤의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였을 것이다.

공수래 공수거.
한바탕 꿈을 꾸었나 보다.
난세라는 꿈을.

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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