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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12월 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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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최충헌의 시대, 23대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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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철
존재감이 희미한 강종의 아들로, ​
징기스칸의 침략으로 금나라가 만주에 대한 지배력을 잃기 시작한 1213년,
2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만주가 몸살을 앓든 말든, 
고토에 대한 야망을 가지지도, 가질 수도 없었던 최충헌은 그저 집안 단속이나 하며 신생 막부체제의
공고화에 주력하였는데,
돈을 펑펑 쓰며 실질적인 왕 노릇을 하던 이 시기가 아마도 그의 평생에서 가장 평온하고 영광스러운
황금기였을 것이나,
아쉽게도 그 기간은 짧았다.
1216년 거란족이 압록강 변에 나타나면서 고려도 동북아의 풍운에 휩쓸려 들어가게 된 것이다.

현종에게 안습의 몽진을 강요하기도 했던 거란족은 금에게 멸망한 후 일부는 멀리 이란까지 달아나
나라를 세우기도 하였지만,
만주에 남아 금의 지배를 받던 부족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징기스칸이 나타나 철천지원수인 금나라를 마구 두들겨 패자, 자발적으로 몽골에 협조하였다.
그러나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용꼬리 보다는 뱀 대가리를 선호하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어서,
​이런 자들은 야사불을 중심으로 일종의 힘의 공백 지역인 고구려의 비사성이 있던 징주에
대요수국을 세웠다.
처음에는 제법 흥기하여 포선만노의 정벌군을 물리치기도 하였으나,
일 년도 못되어 몽골의 토벌군에게 패하였고, 근거지에서 쫓겨나 압록강 변까지 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돌아가 목이 잘리기 보다는 자립을 선택한, 포선만노가 간도 지역에 설립한 동진국에게 퇴로가 막힌
이 거란의 잔당들은 고려가 만만해 보였는지 압록강을 건넜는데,
총원이 가족 포함 9만이었다고 하니 전력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고려를 점령하여 요나라를 이어가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던 모양인데,
강동 6주를 믿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의 운명 보다는 자신의 안녕에 훨씬 관심이 많았던 최충헌은 그냥 방치하였다.
그러나 50년 가까운 중앙의 혼란은 변경의 방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으므로,
철벽의 요새지대는 옛 명성에 무색하게 거지 떼들의 공격에 무력하였다.

의주를 지나 평양을 유린하고 개경 인근 까지 육박하는 거란군을 본 최충헌은 가병들로 자신과
아들 최우를 호위하게 하였으며, 
거란의 잔당들을 퇴치하기 위해 승병을 비롯한 군사들을 모집하였다.
그런데 ​모집 과정에서 능력이 출중한 자들은 가병으로 돌리고 나머지는 정규군에 소속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자신의 문객들 중 국가에 봉사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귀양을 보냈다고 한다.
당대 고려 최강의 전력인 최가의 가병들은 유세떠는 데나 쓰고, 
애꿎은 중들이나 끌고 가는 작태에 열 받은 흥왕사를 비롯한 사원 세력들은 이에 저항하였으나,
막강 최충헌의 가병들에게 박살나버렸고.
거란의 거지들은 자신들의 전력으로 개경 공략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철원과 원주 방면으로 방향을 틀어 살육과 약탈을 지속하였다.
이리 되자 인심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조야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으나,
그동안 물불 안 가리고 구축했던 세력 덕분에 정권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는데,
침입한 거란족도 김취려라는 걸출한 명장이 해결해 주어 최충헌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수염이 멋있었다는 김취려 장군은 언양 사람으로,
능력도 부족하고 빽도 없어 최충헌의 도방에 들지 못한 무지렁이들을 이끌고,
장남이 전사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분전하여, 영주, 박달재 등지에서 크게 승리하였으며,
동북면 쪽으로 쫓겨 간 적도들이 군사를 보강하여 이듬해에 재침하자,
이들을 강동성 고립시켰고 몽골군과 힘을 합쳐 함락시킨 후 그 유민 5만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
몽골군 사령관과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안정을 되찾은 최충헌은 말 안 듣는 놈들은 귀양 보내며 열심히 막부를 운영하다가,
1219년 7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그는 말년에,
고종에게 받았던 왕씨와 궤장을 반납하고 죄수들을 사면하는 등의 약간의 선행을 베풀었고,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자 하루 종일 풍악을 올리게 하여, 그 음악 속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스스로는 만족스러운 죽음이었을지 모르나 사관의 평가는 엄격하였다.
“최충헌은 미천한 데서 몸을 일으켜, 나라의 정사를 오로지 하였다.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며 벼슬을 팔고 옥사를 흥정하였으며,
심지어 두 왕을 내쫓고 조신을 많이 죽이기까지 하였다.
크나 큰 악이 하늘에까지 뻗쳤는데도 목숨을 잘 보존하여 방안에서 죽었으니,
천도를 알 수 없음이 이와 같은가 ”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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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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