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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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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 몽골의 침입을 격퇴한 나라들

세계 전사상  몽골군만큼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군대는 거의 없다 .
알렉산더 , 카이사르 , 아틸라 …정도와 비교해 봐도 몽골군이 더 쎈 느낌인데 ,
이 엄청난 압도감 때문에 마치 몽골군이 천하무적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
몽골군이 패배하거나 점령에 실패한 나라도 많다.

우리하고도 연관이 많은 일본을 보면,
쿠빌라이는 남송과 전쟁을 할 때 일본에게 송과 관계를 끊고 원에 복종하라고 요구하였으나,
십대의 쇼군은 겁도 없이 거부했고, 수차례에 걸친 협박에도 무시로 일관하였다.
이에 열받은 쿠빌라이는 고려를 앞세워서 일본으로 쳐들어갔는데, 
마치 유럽의 기사를 연상케 하는 무사도의 일본군과 전쟁 전문가들의 싸움이었으므로, 게임이 될 수
없었다.
연합군은 초전부터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거의 완승할 뻔했으나, 
태풍으로 타고 온 배가 왕창 부서지는 바람에 보급이 걱정이된 연합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되자 쿠빌라이는 아쉬웠던지,
옛 송의 병력 10만까지 포함된 대규모 원정대를 조직하여 2차 침입을 명하였고,
선발대로 끌려간 김방경이 지휘하는 고려군은 선전하였으나, 태풍에 또 발목을 잡혔다 .
남송의 병력 10만은 배에서 내려 보지도 못하고 배의 침몰과 함께 다수가 사망하였고 , 
곤죽이 되어 겨우 상륙한 병사들도 일본의 적개심이 가득한 칼날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
일본 애들도 일차 때 피 흘리며 제법 배웠던 모양이다 .
14만의 연합군 중 생환한 병사는 3만에 불과했다고 한다.
쿠빌라이는 3차 원정도 계획했으나 베트남이 더 열받게 하는 바람에 칼끝을 베트남으로 돌렸고, 
덕분에 일본은 태풍 때문에 이겼든 뭐 때문에 이겼든,
몽골의 침입을 격퇴했다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게 되었다.
몽골은 자체 동원한 병사나 자원이 극히 적었기 때문에 피해 또한 거의 없었으나, 
원정 준비에 피박을 쓰고 괜히 끌려가 칼춤을 췄던 고려나,
칼춤도 제대로 못 추고 죽는 역할만 했던 남송군만 한심하게 된 셈이었다.

일본은 재수가 좋았다고 치고 ,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
쿠빌라이는 남방해상로를 장악하기 위하여,
세 번에 걸쳐 베트남을 침략했고 세 번 다 수도를 함락하는 개가를 올렸으나, 
베트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치열하게 저항하였다.
특히 이차 침략에서 쿠빌라이는 50만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과장했다 해도 굉장한 병력이었을 것이다.
이 어마무시한 공격에 수도 하노이는 물론 전국토가 유린되어 임금도 항복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구국의 영웅 쩐흥다오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전국에 왕조가 위험하다고 호소하였고, 
그의 호소에 백성들이 호응하여 무려 25만의 장정들이 모였다고 한다.
쩐흥다오는 이렇게 모은 병사들로 게릴라전을 전개하는 한편 청야전술을 사용하여 몽골군을 괴롭혔고,
전쟁의 장기화로 무더운 기후와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몽골군은 결국 후퇴하다 역습에 말려 대패하였다.
게릴라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반 백성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므로,
베트남 쩐 왕조의 평소 정치가 나쁘지 않았고, 민심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패배한 몽골응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재차 침입하였으나,
쩐흥다오는 다시 바다와 육지에서 활약하며 조국에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 주었다.

그외 몽골의 침입을 막았던 나라들을 보면 ,
캄보디아는 베트남이  2차 침입을 받았을 때 고려처럼 덤으로 침입을 받아 수도를 내주었으나,
베트남과 함께 게릴라전을 수행하여 물리쳤고.
백인의 발상지, 체첸의 고향 등으로 알려진 캅카스 지역 또한 몽골군을 격파하였다.
페르시아 속담에 ‘왕이 미치면 캅카스로 전쟁하러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동네는 지형이 험하고 아주 호전적인 민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 살벌한 땅에 수부타이와 제베가
쳐들어갔다가 거의 죽을 뻔했다고 한다.
결국 그 대단한 몽골군도 캅카스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의 그루지야인 조지아국과 동맹을
맺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자바섬도 몽골군을 격퇴하였고.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역시 명군 바이바르스의 활약으로  몽골 세력을 시리아에서 격퇴하였다.
인도의 노예 왕조, 할지 왕조, 투글루크 왕조도 몽골의 도전을 받았으나 치열하게 싸웠고 결국
견뎌내었고.
폴란드도 초장에 무지 깨졌으나, 몽골 내부의 사정이든 뭐든, 아무튼 저항하여 성공적으로 지켜내었다.
노보고르드는 습지가 많은 땅인데 폭우까지 내려 땅이 너무 질척거리는 바람에 패스, 무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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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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