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킬오닐, 그는누구인가?

 

[수완뉴스 기획취재1팀 김준형 학생기자] 2015년 8월 12일, 한국의 농구팬들에게는 가뭄의 단비나 다름없는 소식이 들렸다.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우승으로 시즌이 끝나 별 재미있는 소식이 없던 와중에 한때NBA를 지배했었던 ‘가장 지배적인’ (Most Dominant Ever, 이하 MDE) 샤킬 오닐의 방한 소식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닐이 한국의 TV프로그램에서 출연했던 방송은 이미 방영도 되었고, 이제는 오닐과 서장훈이라는 각각 미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센터들이 같이 선 사진도 인터넷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본 기자는 뒤늦게나마 오닐의 방한을 기념해 그를 재미있게 소개하는 기사를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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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nfernee Hardaway

 

1992년 오닐은 1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영입된다. 데뷔하자마자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센터 중 하나가 되었고, 팀의 전년대비 20승이나 올랐고, 오닐은 신인상을 무난히 차지하게 된다.하지만 팀은 오닐에게만 의존할정도로 약체였는데, 마침 올랜도에서는 또 다른 신인을 지명해서 오닐을 보좌하게 한다. 올랜도는 1993년 1순위로 크리스 웨버를 지명해 팬들에게 ‘트윈타워’를 기대하게 하기도 했으나, 결국 웨버를 앤퍼니 하더웨이와 트레이드한다.

 

하더웨이의 도움을 받은 오닐은 3년차 시즌에 득점왕에 오르고, 팀도 동부 컨퍼런스 1위에 올려 놓았다.이 과정에서 복귀한 마이클조던까지 꺽었는데, 당시 조던이 오닐에게 그가 언젠가 리그를 지배할 것이라는 말을 해 팬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화자되고있다. 안타깝게도 결승전에서는 하킴 올라주원이 이끄는 휴스턴 로케츠에게 패배했지만, 젊은 콤비에게는 훌륭한 업적이었다.

 

하지만 이 콤비도 영원하지는 못했는데, 오닐은 하더웨이에게 더 호의적인 언론과 그를 전혀 보호해 주지않는 올랜도구단에게 실증을 느껴 1996년 로스엔젤러스 레이커스와 7년 1억 21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금액에 계약한다. 하더웨이는 이후 팀을 홀로 이끌다 여러 부상으로인해 빛을 잃고만다.

 

D

Dwyane Wade

 

오닐의 NBA 커리어에는 6번의 파이널 진출과 4번의 우승, 2번의 준우승이있다. 이 수많은 파이널 중에서 오닐은 단 한번의 파이널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팀의 1인자였는데, 그가 에이스가 아닌 보조자로서 4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었을 때 팀의 1인자가 드웨인 웨이드였다.

 

당시 오닐은 코비와의 불화로인해 레이커스를 떠나 마이애미 히트와 계약했는데, 이후 오닐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그는 코비와의 안좋은 추억때문이라도 새로운 팀에서는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마침 오닐에게는 코비와 같은 포지션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어린 선수가 있었다.

 

오닐은 웨이드가 폭발한 2006년 파이널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4-2로 꺾고 그의 커리어의 4번째이자 마지막, 그리고 조력자로서는 첫 우승을 하게 된다. 지금도 오닐은 웨이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K

Kobe Bryant

 

오닐은 코비가 여물지 않았던 유망주시절에서 결국에는 그를 쫓아낼 정도로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것 까지의 과정을 다 지켜보았다. 오닐이 최근에 한 인터뷰에 따르면 ‘코비가 언젠가 자신을 뛰어넘을 까봐 두려웠다’라고 했으며 실제로 코비가 성장 할수록 그를 의식하는 인터뷰를 했었다. 그들의 불화는 2004년 오닐이 팀을 떠나기 이전인 2001년에 최악이었는데, 매직 존슨, 카림 압둘자바등 레이커스의 레전드들이 직접 나서서 화해시켜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사이와는 별개로 경기장 내에서의 호흡은 최상이었는데, 그들은 콤비를 이루어서 3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3연속 우승은 가장 최근의 3연속 연패 우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전의 3연속 우승은 빌러셀의 보스턴과 마이클조던의 불스 밖에없다. 다행히도 현재는 화해했는지, 2013년 오닐의 영구결번 행사에 코비가 영상으로나마 축하인사를 하기도했다. 오닐도 지금은 둘이서 화해를 했다고 밝혔다.

 

L

Los Angeles Lakers

 

1996년, 오닐은 올랜도구단에 실증을 느껴 마침 센터가 필요했던 레이커스로 이적한다. 당시 구단은 신인 코비브라이언트를 지명하기 위해서 센터 블라디 디박을 샬럿으로 이적시킨 상황이었기 때문에 양쪽에게 득이되는 선택이었다. 특히, 올랜드가 있었던 동부와는 달리 레이커스의 서부는 마이클 조던이라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가 없기도 했다.

 

오닐은 경쟁자들의 노쇠화와 본인의 전성기가 겹치는 행운과 함께 리그를 지배하며 3연속 우승을 한다. 비록 그가 선수생활말년에 우승을 하기 위해서 라이벌팀인 보스턴 셀틱스로 이적하기도 했지만, 팀은 그의 업적을 더 우선시해 2013년 4월 2일오닐의 34번 유니폼을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그의 유니폼은 레이커스의 홈구장인 스테이플스 센터에 걸려있으며, 그 어느 선수도 레이커스의 34번을 입을 수 없다.

 

M

Most Dominant Ever

 

MDE, 즉 ‘내가 최고다’. 이 별명은 오닐 본인이 스스로 만든 별명이며, 그가 전성기를 보냈던 2000년대 초반부터 그가 이미 은퇴한 지금까지도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그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오닐은 비록 시즌MVP는 1번에 그쳤지만 파이널MVP는 3년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2번의 득점왕등 엄청난 업적을 세웠다.특히 그의 2000년 MVP 시즌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성기 마이클 조던도 밀린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T

TNT

 

만약에 은퇴한 농구선수들이TV에 나와서 현 농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허재와 서장훈이 같은 방에서 현재 농구에 대해서 농담을 한다고 상상한다면 쉽다. 미국에는 이미 그런 프로가 있다. 비록 마이클 조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라이벌인 찰스 바클리를 비롯한NBA의 레전드들은TNT에서 주관하는 농구관련 방송에 출연해서 화려한 입담을 자랑한다. 오닐도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데 사실상 가장 말을 많이한다. 본 기자가 해당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남기는 감상평은 ‘바클리랑 오닐 둘이서만 말하네’ 이다. 이것은 오닐의 활발한 은퇴 이후활동을 대변하기도 하는데, 은퇴했지만 계속 그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에게는 희소식이다.

 

Q

Sacramento “Queens”

이번 결승전에서 르브론의 Queen James 사건이 아니다..

오닐은 선수시절에도 좋게 말하면 화려한 입담을, 냉정하게 말하자면 험한말을 자주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Sacramento Kings라는 라이벌팀을 Sacramento “Queens”라고 조롱한 것이다. 킹스구단은 오닐과 레이커스 구단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오닐은 아직까지도 해당사건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은 상태이다.아이러니하게도, 오닐은 현재 킹스구단의 경영진의일원이다 .어쩌면 사과를 할 필요가 없는 ‘높으신 분’이 된 것 일지도 모른다.

 

3.5

3.5 blocks

 

1992년 오닐은 데뷔하자마자 리그를 지배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된다. 그가 신인이었을 때는 하킴 올라주원,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이있었기에 센터포지션의 1인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90년대 중반에 그는 이미 리그최고의 센터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센터에게 가장 중요한 수치 중 하나인 블락기록은 커리어가 거듭 할 수록 하향세였는데, 수비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오닐의 플레이스타일과 성격이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블락 커리어하이는 데뷔시즌의 3.5 블락인데, 이것은 그의 안티들이 자주 욕하는 대상이 된다

 

50

NBA’s 50 Greatest Players

 

1996년 미국프로농구NBA는 창단 50주년을 맞이해서 가장 뛰어났던 50명의 선수들을 뽑았는데, 오닐은 데뷔 4년차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그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선정은 아직까지도 논란이 있는데, 실제로 그는 더티플레이로 악명이 높은 칼 말론과 함께 야유를 받기도 했다. 그의 선정의 유일한 쟁점은 ‘당시의 오닐’이 위대했냐 이다. 현재의 오닐은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 10위안에 들어가는 선수이다. 하지만 당시의 오닐은 우승이나MVP를 한번도 차지하지 못하는 ‘요즘 잘나가는 젊은선수’에 불과했다. 위에서 명시한 프로그램에서도 오닐을 제외하고는 (특히 바클리가) 당시 오닐의 선정은 퍼포먼스적 성격이 너무 강했다는 것 이주된 의견이다.

수완뉴스 기획취재 1팀 ‘서기단’ 김준형 학생기자(nihaoj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