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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고국양왕, 다시 요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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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 대 고국양왕

384년 소수림왕이 후사 없이 서거하여 오랜만에 형제 상속으로 왕위에 올랐다.
휘는 이련 또는 어지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그저 위대한 아들을 둔 아버지 정도의 이미지이나,
이 분도 만만한 왕은 아니어서, 385년 4만의 병사를 동원하여 후연을 공격하였고, 역사상 처음으로 요동을 점령, 통치하였다.
그러나 상대가 이제 막 창업하여 기세가 등등한 후연이어서 해를 넘기지 못하고 도로 빼앗기고 말았는데,
아쉽기는 하나, 후대의 완전 점령 및 영토화로 가기 위한 전초전으로서 그 의미는 상당하다.
다음 해에 우리의 호프 담덕을 태자로 임명하였고,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결과는 별로 신통치가 않았다.
가문과 기근으로 고생하는 사이 백제의 침입을 받았고, 390년 진사왕에게 도곡성을 빼앗겼다.
392년, 신라에게서 이름도 이상한 실성을 인질로 받았다.
전성기의 백제에 시달린 신라가 고구려에 의지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신라 속국화의 시작이므로 업적으로 보아 무방하다.
3월에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하였다.
고구려에 아직까지 사직이 없었다는 것이 의아하다.
5월에 서거하여 고국양에 묻혔다. 7년의 짧은 재위였다 .

위대한 형님과 아들 사이에 끼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떨어지고, 시호가 고국원왕과 비슷하여 뭔가 시원찮게 느껴지지만,
위,아래로 치고받으며 고구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고,
불교를 장려하고, 사직을 세우는 등 왕실의 권위를 높여 후대의 최전성기를 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명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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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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