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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2월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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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영류왕, 실각한 전쟁 영웅

당에 굴복하여 대고구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유약하고 어리석은 왕으로, 보다 못한 영웅 연개소문에게 살해된 한심한 이미지이나,
그는 평양성 전투에서 내호아의 4만 수군 정예병을 500 결사대로 박살내어 살수대첩을 가능케 한, 
희대의 명장이자 2차 여수전쟁의 수훈갑이었다.

휘는 건무, 영양왕의 이복동생으로 618년에 즉위하였다.
비록 수나라를 패퇴시켰다고는 하나, 그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어 숨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고구려를 물려받은 영류왕은,
자신이 뛰어난 지휘관이기도 하였으므로, 통일된 대륙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알았고,
더 이상 대륙과의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제 정신이 있는 고구려인이라면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영류왕의 대륙쪽 파트너는 수를 이은 당이었으므로, 즉위 이듬해부터 당에 조공하기 시작하였고,
즉위 5년에는 이전 전쟁의 포로들을 교환하였으며,
7년에 당의 국교인 도교를 수입하는 등 당 고조와 제법 친하게 지내었다.
그런데 재위 9년째에 중국 역사에 손꼽히는 명군이자 당대의 군사전략가인 당 태종 이세민이가 쿠데타로 집권하였다. 고구려에 본격적인 암운이 드리워진 것이다.
백제, 신라와 화친하라는 이세민의 강요에도 응하였고, 재위 11년째에는 당에 봉역도를 바치는 등 알아서 기었다.
12년에는 김유신에게 낭비성을 잃었으나 남쪽에 전력을 기울일 수 없어 탈환하지 못했다.
14년에는 당의 사신 놈이 여수전쟁의 승전 기념물인 ‘경관’을 허무는데도 내버려두었고,
당의 위협이 가중되자 부여성에서 발해에 이르는 천리장성의 축조를 시작했다.
20년에는 신라의 칠중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23년에 당의 압력에 굴복해 태자 환권을 입조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학에 입학시켜주기를 청원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굴복적인 자세는 국내 강경파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고,
24년에 태자의 입조에 대한 답례로 온 당 사신 진대덕이라는 놈이 간첩질을 하고 돌아가,
고구려 정벌을 건의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왕을 비롯한 온건파의 입지는 더욱 옹색해졌는데,
이 와중에 당의 압력으로 천리장성의 축조를 중단하려 하자, 강경파들이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왕은 반대파들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천리장성 축조 책임자였던 연개소문에게 선수를 빼앗겼고,
열병식장에서 온건파 신하들과 함께 참살되어 영류산에 묻혔다.
24년 1개월간의 재위였고 참으로 고단한 일생이었다.

영류왕은 합리주의자였던 것 같다.
통일된 중국 세력에 맞서 나라를 멸망으로 몰고 가기보다는, 그들의 힘을 인정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나라를 보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는 당시 고구려 조야의 합의된 의견이었으며, 연개소문도 이에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은 당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태도로 일관하였으나, 전쟁 영웅 출신답게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않아서, 배후의 위협이 되는 신라와는 격렬히 대립하였다.
다만 현존하는 당의 위협 때문에 신라에 집중하지 못하여 별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 흠이었다.
또한 천리장성의 축조는 수와의 전쟁으로 초토화된 요동 방어선을 복원, 보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국력의 낭비였으며 자신의 죽음을 불러오게 만든 패착이었다.
연개소문의 쿠데타는 정책적 갈등 때문이기 보다는,
전통적으로 왕권이 약해 비대한 귀족 세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고,
그로인해 파벌간의 갈등이 항상 내재하고 있던, 고구려의 태생적 한계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부질없는 가정이겠으나 영류왕이 연개소문을 먼저 제거하고, 시간을 두고 나라를 추슬렀다면,
이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고 멸망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우리 역사에 연개소문이라는 영웅은 없었겠지만, 대신에 그의 못난이 아들들이 나라를 망치는 꼴은 안 보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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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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