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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2월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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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보장왕, 최후의 불꽃 연개소문

제 28 대 보장왕

연개소문에게 참살된 영류왕의 조카로 무늬만 왕인 오욕의 세월을 살다가,
대고구려의 간판을 내린 안습의 군주이다.
당나라로부터 노자의 도덕경을 처음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으므로 노자의 무위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평양성 함락 후 당나라로 압송된 보장왕은 실권이 없었으므로 책임 또한 없다 하여 벼슬을 하사받았고,
기미지배 정책에 따라 요동도독조선군왕에 임명되어 요동에 머물렀다.
그러나 700여 년을 존속하며 동북아의 강자로 군림했던 고구려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재기를 노려 말갈과 함께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아쉽게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양주에 유배되어 682년에 훙하였다.
대고구려 왕으로서의 기개를 하필 막판에 보여준 것이 아쉽기는 하나,
민족의 자존심을 그나마 살려준 고마운 일이었다.

* 연 개소문
신흥 귀족 세력인 동부 대인 연태조의 아들로서,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과 반대파 귀족들 100여명을 시해하고, 대막리지에 올라 철권을 휘둘렀다.
그러나 왕이 아닌 한계 때문이었는지 지방 세력들까지는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여, 안시성주를 비롯한 많은 군벌들의 반발을 샀고, 
이는 대당 방어의 약화로 이어져 여당 전쟁에서 요동방어선이 조기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당의 침입을 수차례 막아내긴 하였으나,
그 와중에 국력을 알뜰히 탕진하고 자식 농사까지 망치는 바람에 고구려를 멸망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김춘추의 제의를 거절하고 신라를 압박한 것도 외교적 실책이었다.

이 이외에도 여러 가지 비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운이든 뭐든 당대 세계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당나라의 전력을 기울인 침입을 막아,
민족의 자부심을 다시 한 번 드높인 공로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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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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