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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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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23대 안원왕, 쇠퇴의 시작

휘는 보연, 체구가 장대하고 도량이 넓었다고 한다. 
안장왕이 로맨티스트답지 않게 후사도 없이 서거하여, 531년 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남북조와는 전통의 조공 외교를 이어 갔고, 끊임없는 자연 재해에 시달렸으며,
재위 3년째에 아들 평성을 태자로 삼았고, 재위 10년째에 백제의 침공을 막았으며,
재위 15년 만에 사망하였다.

치세를 평가하기엔 기록이 심히 빈약한데,
이냥반 치세의 어두운 이야기가 일본서기에 전한다.
구라로 떡칠 한 일본서기에서 그나마 믿을 만하다고 하니 인용을 해보면,
왕은 정부인에게서는 왕자를 얻지 못하고,
후궁인 중부인, 소부인에게서 각각 아들을 하나 씩 얻었는데,
그 중 중부인의 아들 평성을 태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으나,
소부인 측에서 반발하여, 
왕이 병으로 눕자 중부인 측과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중부인 측의 두목은 추군, 소부인 쪽은 세군이었다고 하는데 둘 다 외척 세력이었던 듯하다.
이 두 세력은 궁문에서 치열하게 맞붙었고, 추군 측이 승리하였는데,
승리한 추군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 양, 
3일간 잔당을 소탕하여 약 2000여 명을 살해하였다고 한다.
그 와중에 병이 악화된 것인지, 칼을 맞았는 지는 모르나 왕도 사망하였고.

추군은 국내성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던 귀족 불교세력이고, 세군은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신진 불교세력이었다는 설도 있는데, 
뭐가 되었건 안원왕 시절, 지배층의 분열과 암투가 매우 심하였고, 따라서 왕의 권위가 형편없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지배층이 이 꼬라지면 민심 이반은 불 보듯 뻔한 것이고, 거기에 자연 재해까지 겹친다면 나라가 엉망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을 것이다.
쇠퇴기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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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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