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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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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24대 양원왕, 안쓰러운 아이

휘는 평성, 545년 왕위에 올랐다.
일본서기에는 즉위 당시 나이가 8세로 되어있으나,
골육상쟁을 벌인 그 평성이라면, 533년에 태자가 되었으므로 최소한 12살은 넘어야 한다.
뭐가 되었건 어린 나이에 옥좌에 앉은 듯하다.

치세를 보면, 남조와 교류를 중단하고 북조에만 조공하였다.
교통비 아끼려고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나라의 힘이 약해져 북조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을 것이다.
즉위 3년에 백암성과 신성을 수리하여 전쟁에 대비하였다. 신흥 돌궐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나 보다.
4년에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신라가 백제를 도와 실패하였고,
6년에 백제에게 도살성을 빼앗겼고, 신라에도 2개 성을 빼앗겼다.
7년에는 돌궐이 침입하여 신성과 백암성에서 싸웠으며 군사 일만을 동원하여 패퇴시켰으나, 
이 기회를 틈탄 신라에게 10성을 빼앗기며 한강 유역을 잃었다.
8년에는 장안성을 축조하여 수도의 방비를 강화하였다. 나제 동맹 때문에 불안했었나 보다.
10년에는 백제 웅천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3년에는 환도성 간주리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구 귀족 세력과 신진 세력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재위 15년 만에 아직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전통의 우방 유연은 돌궐에 밀려 망하기 직전이었고, 북제는 이전 북위와 다르게 고구려를 얕보았으며,
나제동맹은 점점 위력을 더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성을 수리하고 돌궐의 공격을 막아내었으며, 장안성을 축조하고 나제동맹과 끊임없이 대립하였며,
반란도 진압하였다.
북제의 사신 최유에게 두들겨 맞는 수모를 당했다는 야사가 전해지는데,
그럴 리야 없겠으나,
승려 혜량이 나라가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거칠부에게 망명을 요청한 것이 이 시기이므로,
고구려의 내부 사정 및  국제적 위상이 형편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불미스러운 사건 와중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니 무엇인들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만은,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
옥좌에 앉아 불안에 떨었을 어린 왕, 안쓰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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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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