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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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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20대 비유왕, 까마귀 밥이 되다.

20 대 비유왕

구이신왕의 맏아들 또는 전지왕의 서자라고 하는데,
구이신왕이 26살에 죽었으므로 그 맏아들은 아닐 것이다.
뭐가 됐건 29년간 재위했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언변이 좋았으며,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의 눌지 마립간과 그 유명한 나제 동맹을 맺는 등,
외교에도 상당한 재능을 발휘하였으나, 한강에 흑룡이 나타나자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살해되었을 것이다.

비유왕이 죽자 바로 고구려의 침입이 이어졌는데,
나제 동맹에 의해 신라에서 구원군을 파견하였으나, 이미 성이 함락된 뒤였고,
비유왕의 시체는 들판에 버려져 20년 동안 방치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왕인데 이 무슨?
기록이 없으므로 마음껏 상상을 해보면,
후대의 개로왕이 유력 귀족의 대명사인 진씨, 해씨와 격렬한 갈등을 벌이는 것으로 보아,
이 참사의 원인은 귀족들이 제공하였을 것이고, 이러한 귀족들과의 갈등은 비유왕의 반고구려 정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수왕의 강력한 고구려에 맞서려는 비유왕은, 귀족들에게 아신왕대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을 것인데, 설상가상으로 나제동맹까지 맺어 고구려의 반감을 증폭시켰으므로,
귀족들은 비유왕을 제거하는 것만이 자신들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일종의 반역질이긴 하나, 원래 귀족동맹체의 성격이 강했던 백제에서,
귀족들에게 왕이란 무조건적인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동맹의 대표자 정도의 의미였으므로,
귀족들의 이익에 반하는 약한 왕은, 동지가 아닌 언제든 제거가 가능한 적일 뿐이므로,
별 죄책감도 없었을 것이다.

뭐가 어찌 되었건, 매국적인 일부 귀족들이 고구려와 내통하여 비유왕을 살해하였을 것이고,
왕당파들은 이에 반발하였을 것이므로,
결국 내분에 휩싸인 백제는 고구려의 침입에 별다른 저항을 못하였고.
고구려는 경고의 의미로 비유왕을 들판에 버려 까마귀밥이 되게 하였다…가 아닐까?

뭐가 어찌 되었건 백제는 아신왕대에 이어 또 한 번 망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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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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