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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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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21대 개로왕, 목이 잘리다.

21 대 개로왕

고구려의 첩자에 속아 재정을 낭비하고, 바둑이나 두다가 나라를 말아먹고, 전쟁터에서 목이 잘린 이름도 괴로운 개로왕,
도미 설화의 음탕한 폭군의 당사자로 의심받기도 하는,
허랑 방탕, 황음무도, 어리석음의 대명사로서, 백제 사상 가장 찌질한 이미지의 왕.
이런 상태의 왕이라면 가쉽도 풍부하고 기록도 많아야 정상일 텐데,
의외로, 즉위 14년까지는 외국의 사서에 몇 줄 나타나는 것이 전부이다.

기록이 부족하므로, 심증만으로 추정을 해보면,
아신왕 사후 진씨, 해씨를 비롯한 대 귀족들은 고구려에 대항할 의지를 잃었고,
고구려에 거의 복속되어있는 상황이었으나, 오로지 왕가만이 복수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비유왕 이전까지는 국력이 미약하여 고구려의 반 속국이라는 굴욕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으나,
비유왕대에 이르러 어느 정도 국력이 회복되었고, 비슷한 처지였던 신라 또한 고구려에 대해 자주독립을 꿈꾸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동병상련의 비유왕과 눌지왕은 나제 동맹을 맺었고, 연합하여 고구려에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였으나,
대귀족들은 아신왕대의 악몽이 떠올랐을 것이고, 필연적으로 갈등하였을 것이다.

고구려의 사주를 받았는지 소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국적인 세력에게 비유왕은 살해되었고,
백제를 확실하게 제압할 필요가 있었던 고구려는 이틈에 수도를 함락시키고, 본보기로 비유왕의 시체를 방치하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즉위한 개로왕이 정상적인 왕 노릇을 할 수 있었을 리는 없고,
들판에 버려진 아버지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는 상황을 저주하며 절치부심하여,
아버지의 유산 나제동맹을 기반으로 왕당파를 규합, 대 귀족들을 눌렀을 것이다.
이 과정이 쉬웠을 리는 없으므로, 개로왕의 즉위 초반 14년은 신산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비유왕의 시체는 들판에 버려진 채 2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즉위 15년(469년)부터 개로왕은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게 하는 등 고구려에 다시 칼을 들었는데,
18년(472년)에는 외교적으로도 수단을 부려, 북위에 고구려 정벌을 요청하는 국서를 보내었다.
소위 개로왕 국서 사건인데, 동문선에도 수록되어 있는 명문이라고는 하지만,
이 명문이 북위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하였고,
대신 장수왕의 분노와 침략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에서 첩자로 보낸 승려 도림의 진언에 따라.
왕성의 성곽과 궁실, 누각, 활 쏘는 사대 등을 짓고 선왕의 능묘를 수리하는 등, 무리한 토목공사를 벌여 국고가 고갈되고 백성들이 곤궁에 빠졌으며,
이를 틈타 쳐들어온 고구려 군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어 개로왕 자신도 죽음을 맞았다고 하는데,
그 무리한 토목공사라는 것의 항목을 살펴보면,
고구려와 전쟁을 준비하거나, 궁궐을 수리하고 20년간 방치 되었던 부왕의 시신을 수습하는 등의 일들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해야만 할 일이기도 했다.
궁궐의 정원에 사치를 부렸다는 기록도 있으나,
진사왕대에 완성된 정원에 장식 좀 더했다고 국고가 탕진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도미설화는 말 그대로 설화이므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아무튼, 475년, 고구려 군이 공격해오자 개로왕은 왕자 문주를 남쪽으로 도피시키고,
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수십 기를 거느리고 성을 빠져나왔지만,
백제 출신의 고구려 장군에게 붙잡혀 아차산 아래에서 피살되었다.
이 백제의 배신자는 먼저 개로왕에게 절을 한 뒤, 침을 뱉고 목을 베었다고 한다.
쌓인게 많았었나 보다.

피신한 문주는 신라로 도망쳐 구원군 1만을 끌고 돌아왔으나,
위례성은 7일간의 공방전 끝에 불에 타, 재만 남은 상태였다.
왕당파 귀족들도 원병을 이끌고는 왔으나 신라의 원병보다도 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백제의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개로왕, 그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재위 21년 만에 나라를 완전히 말아먹으며 한성시대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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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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