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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2월 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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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24대 동성왕, 회복의 기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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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대 동성왕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로, 해구의 반란을 토벌한 진씨 세력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어린나이에 등극하여 멋도 몰랐던 삼근왕과는 다르게, 신진세력을 대거 등용하는 등 왕 노릇을 제대로 하였다.
누대의 대 귀족이자 반정 공신이나 다름없는 진씨를 다루는 솜씨로 보아 대단한 정치력을 지녔던 것 같다.

481년(동성왕 3년)에는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공한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을, 신라 및 가야와 연합하여 격퇴했으며,
백제로 쳐들어 온 북위군을 격파했다….는데, 요서백제? 믿기도 어렵고 안 믿기도 그렇고.
아무튼 요서에 친 백제 세력이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백제와 왜의 관계처럼.
그리고 오랜만에 말갈이 튀어 나오는데,
그사이에 고구려에 복속되었었는지, 아니면 어디 산골에 짱 박혀 있었는지는 모르나,
얘들도 이 땅에서 굳세게 살아온 한반도 원주민임에는 틀림없다.

494년과 495년에는, 두 해에 걸쳐 백제와 신라를 번갈아 침공해오는 고구려의 군대를 신라와 연합하여 격퇴하였고,
498년에는 탐라국을 복속시켰다.

개로왕 이후 단절된 중국(특히 남조)과의 관계를 회복시켰고,
신라의 소지왕과 결혼동맹을 맺었으며,
가야의 혼란에 개입, 가야연맹에 대한 세력 확대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회복된 군세를 바탕으로 다시 한강 근처까지 진출하였다.

웅진천도 이후 계속된 혼란을 수습하고, 실추된 왕권과 국제적 위상을 어느 정도 살려내어, 
무령왕 시기의 재 중흥의 발판을 만드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말기에 이르러서는 점차 향락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고 놀기만 했다고 한다.

501년 최측근 백가에게 살해당했는데,
백가는 동성왕을 살해한 후 반란을 일으켰으나, 무령왕에게 저항 없이 항복하였고 처형되었다고 한다.
뭔가 냄새가 나지만 기록이 없다.
재위는 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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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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