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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11월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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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14대 유례 이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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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유례 또는 유리, 다시 석씨 임금으로, 조분 이사금의 아들 또는 손자라고  한다.

이 양반은  창업주도 아니면서 ‘ 어머니가 밤길을 걷다가 별빛이 입으로 들어왔는데 임신이 되었더라’는 망측한 탄생 설화를 가지고 있다.
별빛이든 뭐든 호적상 아버지의 씨는 아니므로 사생아란 이야기인데,
아무리 사위 상속이 대세인 시대라 해도,  뼈다구의 품질을 유난히 따지는 신라에서 어떻게 애비 없는 자식이 왕이 될 수 있었을까?
미추왕의 사위로 왕위를 계승했으나 단지 기록이 없을 뿐이라고 생각해본다 해도,
다른 미추왕의 사위들은 100년 후에나 나타나는데 이 양반은 왜 이렇게 일찍 나타났을까?
그리고 유리라는 이름도 이미 3대 유리 이사금 때 나온 이름이고.
참 이상한 게 많은 양반인데,
그래서 미추왕과 더불어 가공의 인물로 의심받고 있다.

가공의 인물이라니까 좀 허탈하긴 해도 역사란 기록이므로 일단 살펴보면,
284년 미추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는데, 왕위에 오른 후엔 왜구에게 주구장창 시달렸다.
하도 시달리니까 일본 본토 원정을 기획하기도 하였는데, 
단독으로는 엄두가 안 났는지 백제와 연합할 생각까지 하였으나,
도움은커녕 도리어 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재위 14년째에는 옛 이서고국의 군사들이 공격해 왔다는데, 
이서고국은 경주 근처 청도군쯤에 있었던 소국이라 한다.
이 정도 거리면 이미 예전에 박살을 냈을 텐데 새삼스럽게 공격을 해왔다는 것도 이상하고,
신라가 대병을 동원하였으나 막지 못하여, 죽은 미추왕이 전직이 대나무였던 군사들을 보내 막았다는 것은 더 이상하다.
이 군사들은 김씨의 사병들이었다는 해석도 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당시 김씨의 세력이 석씨의 세력을 능가하였다는 뜻이 된다.

만일 미추왕과 유례왕이 가공의 인물이라면 모조리 헛소리가 되긴 하지만,
기록이 있고 재미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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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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