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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1월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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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25대 진지왕, 저승에서 찾아온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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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륜
사는 순 우리말 쇠의 음차이므로 사륜은 철륜과 같은 의미이고,
철륜은 전륜성왕의 네 종류 금륜, 은륜, 동륜, 철륜의 마지막에 해당한다.
진흥왕이 자신을 전륜성왕과 동일시하여 자식들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인데,
진지왕이 철륜이고, 개에 물려죽은 태자의 이름이 동륜이므로, 진흥왕에게는 금, 은에 해당하는 두 아들이 더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있었다고 해봐야 어려서 죽었을 것이다.
전륜성왕이 요절하고, 찌질하게 죽고… 하는 것을 보면 무슨 블랙 코메디 같기도 하지만,
사실 전륜성왕을 자처한 고대 왕들은 많다.
일본의 아쇼카왕이나, 목잘린 백제의 성왕… 등등,
전륜성왕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열받아서 벼락을 때리거나, 아니면 기가 막혀서 은퇴했을 것이다.

진지왕은 형 동륜이 태자의 신분이면서도, 서모와 사통하다 개에 물려 죽었고,
조카 백정이 왕이 되기에는 너무 어렸기에, 다음 서열의 왕위 계승권자로서,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전성기의 신라를 물려받았다고 하므로,
액면만 보면, 마치 정치적 야심이 충만하여 어린 조카의 자리를 찬탈한 수양대군의 대선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허탈하게도 즉위하자마자 상대등 거칠부에게 국정을 맡겼고, 이듬해에 잠시 친정하였으나,
얼마 못가 다시 거칠부에게 대리청정을 맡겼고, 거칠부가 죽자 노리부에게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이럴 거면 뭐하러 왕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신하들에게 의지하였는데,
업적 또한 보잘 것 없어서,
즉위년과 2년의 백제 침입은 어찌 어찌 막아내었으나,
3년에는 패하여 알야산성을 내주었고,
4년엔 백제가 성을 쌓아 길을 막는데도 방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사가 어지럽고, 황음하다’ 하는 고색창연한 이유로 폐위 처분되었는데,
그걸로도 마무리가 안 되었는지, 석연찮은 이유로 폐위 1달 후 사망하였다.

위서 논란이 있는 화랑 세기에 따르면, 모후인 사도 태후와 미실 궁주가 진지왕의 폐위를 주도하였다고 하는데,
화랑세기에만 나오는 이 미실이라는 여인은 사다함의 연인이었고, 진흥왕의 아비 다른 동생 세종의 공식 아내였으며, 진흥왕의 첩으로서 권력을 휘둘렀고, 자기 친동생을 포함하여 수많은 애인을 둔 암사마귀 같은 여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정절과는 담을 쌓고 몸을 무기 삼아 살아온 여인이 후안무치하게도 진지왕을 황음하다 하여 쫓아냈다는 이야긴데…..
사실이라면 어이가 상실이의 두 뺨을 사정없이 때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환타지 소설같은 화랑 세기를 배제하고 보면,
진지왕은 정당한 왕위 계승권자인 조카 백정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기에,
조정의 중신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워야 할만큼 정치적 입지가 취약하였는데,
이 불안한 정국에, 문란하고 기세등등한 왕실의 여인들과 그녀들의 정부들까지 가세하여 치세 초기의 혼란을 부채질하였던 듯하다.
그래도 조정에는 진흥왕기에 신라의 전성기를 열었던 신료들이 다수 남아 있었기에, 진지왕은 그들의 명망에 의지하여 근근히 버티었던 것 같은데,
그 대표격인 거칠부가 사망하자, 버팀목을 상실한 진지왕은 결국 반대파들의 연합 공격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폐위된 듯하다.
이러한 추론이 맞든 안 맞든,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으로 이어진 왕권 강화가 진지왕 대에 이르러 빛이 바랬고, 더불어 신라의 짧은 전성기도 끝이 났다.

*도화녀 설화

진지왕은 폐위되기 직전,
도화녀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마음을 빼앗겼고 동침을 요구하였는데,
이 아름다운 여인이 말하기를,
‘웬만하면 왕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으나, 이미 남편이 있는 유부녀인 고로 불가합니다.’ 하니,
왕은 ‘거참 안타깝다’ 하며 쿨하게 돌아섰다고 한다.
그런데 왕이 폐위되고 죽은 후, 공교롭게도 도화녀의 남편도 세상을 떠나자,
황당하게도 죽은 왕이 도화녀에게 나타나 ‘이제 남편이 없으니 동침하자’고 졸라댔다고 한다.
도화녀는 이 어이없는 일에 정신이 없었는지,
아니면 생사의 경계를 넘는 그 집념과 정성에 감복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뜻대로 하라’고 허락하였고,
왕은 여러 날을 머물며 생전의 한을 풀었다 한다.
이 기막힌 정사의 후유증으로 귀신을 부리는 비형랑이 태어났다고 하는데…

비형랑, 다음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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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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