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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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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 측천무후, 중국사 유일의 여성 황제

이름은 무조, 아명은 무미랑.
목재상으로 거부가 된 무사확의 차녀로 태어나 14살에 당 태종 이세민의 후궁이 되었고,
이쁜이로 불릴 정도로 미모가 뛰어나, 10여 년을 총애를 받으며 그럭저럭 잘 살았으나,
이세민이가 사망하자,
황실의 관습에 따라 머리 깎고 출가하여 남은 평생을 죽은 영감의 명복을 빌며,
향 냄새나 실컷 맡으며 살아야 하는 한숨 나오는 팔자가 되었다.
25살이라는 물오른 나이에, 남자도 알고, 권력의 맛도 알고, 장사꾼 집안 출신의 신앙심 없는 미모의
비구니.
뭔 사달이든 안 났으면 그게 더 이상하였을 것이다.
결국 이 여인은 다시 궁으로 복귀하였는데,
그 복귀 이유가,
아버지의 여자, 이쁜이의 미모를 잊지 못한 고종이 후궁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황후 왕씨가 후궁 소숙비와의 암투에 무후를 이용하기 위해 불러들였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뭐가 되었건 고종은 애비의 첩이었던 여자를, 다시 자기 첩으로 삼은 것이다.
…..자원 재활용도 아니고, 형사취수는 들어 봤어도 원.

액면만 놓고 보면,
“사춘기 끝자락에 무씨 서모의 미모에 홀려 짝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철 없는 황제가,
애비가 죽자 남 몰래 금지된 사랑을 불태우다 그만 애까지 생기고 말았는데,
이를 알게 된 자식 못 낳는 황후가,
남 보기도 그렇고 애가 무슨 죄냐…라고는 안 했겠지만,
황제가 쪽 팔리게 밖으로 나돌지 말고 차라리 계집을 안으로 들여라….고도 안 했겠지만,
어쨌건 첩 반기는 여자는 없으니, 위와 유사한 뉘앙스를 풍기며 궁으로 들이시라” 고 권유한
모양새인데,
그렇다고 왕황후가 남편의 바람을 이해하고 이 패륜적 사랑에 공감할 정도로 워낙에 착한 여자는 전혀 아니었으므로 그녀의 속마음에는,
어짜피 황제의 마음은 떠났고, 지금처럼 소숙비가 총애를 받아 그녀의 아들이 태자라도 되는 날이면
자신이 황후자리에서 쫒겨날지도 모르므로,
황제가 죽고 못사는 이쁜이를 들여 소숙비를 견제하게 하면 자기 자리가 상대적으로 안전해지고,
설령 이쁜이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하더라도,
‘설마 전 황제의 후궁이었다는 결정적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황후자리를 꿈꾸겠냐’는 냉정한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황후의 제안에,
당고종은 윤리고 황실의 체면이고 지랄이고 뭐건 간에, 그리고 황후의 의도에 대한 고려도 없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냉큼 전 서모, 이쁜이를 후궁으로 봉해 그녀를 기쁘게 하였고, 그녀 소생의 아들을 사생아에서 일약
당나라의 황자로 만들었다.
다시 궁으로 복귀한 이쁜이는 이전 며느리들에게 한 수 위의 암투 능력을 선보이며,
황후의 기대대로 소숙비를 견제하였음은 물론,
딸 안정 공주의 죽음을 이용하여 소숙비와 소숙비를 청부했던 왕황후까지 싸잡아서 제거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입궁한지 4년 만에 고종의 두 번째 황후가 되는 기염을 토하였는데,
그러나,
황제가 의붓 어머니와 사통하여 자식을 낳은 것으로도 모자라 조강지처를 쫒아내고 정부인으로 삼는,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문명국을 자처하는 당대 세계 최강대국 당나라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황태후를 비롯한 황실 종친들은 물론 조정의 중신들까지 기를 쓰고 반대하였을 것이니,
과정 하나 하나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후의 목숨은 물론 황제의 직까지 걸어야 하는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을 것이다.

당시 당나라의 권력 상층부는 관롱집단이라는 일종의 무력 집단이 장악하고 있었다.
얘들은 북위 시절부터 존재하던 무벌인데,
수나라의 건국과 멸망, 당의 건국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당 고조 이연 또한 이 집단 출신이라고 할 수 있었으므로,
수말 당초에 발행한 황위 쟁탈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권력투쟁은 결국 관롱집단 내부에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관롱집단은 일반적인 파벌이나 명문가 수준의 권력집단이 아니라,
강력한 힘을 가진 여러 가문들의 연합체로서 국가 존립과 황권의 기반이 되는, 심하게 말해 당나라의
실질적 주인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었으므로,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쫒아내는 살벌한 골육 간의 권력 투쟁을 통해 황위에 올랐고,
돌궐을 확실히 밟았으며, 비록 정벌에는 실패했으나 고구려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 넣었는가 하면,
내치에도 재능을 발휘하여 후대에 정관의 치라고 칭송받는 시대를 열었던,
그 대단했던 당태종도 얘들만은 함부로 대하지 못했으며, 대쪽 선비 위징도 이것들의 눈치는 살폈다고 한다.
이들의 세력은 세월이 흘러도 줄기는 커녕 더욱 커져, 고종 대에 이르러서는 황제도 어쩌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거대문벌에 의한 세도정치 수준이었나 보다.
그런데 왕황후도 이 관롱집단 출신이었으므로,
관롱집단의 수장인 공손무기의 반대를 무릅쓰고, 왕황후를 제거하고 이쁜이를 황후로 만드는 것은,
이 집단과의 정면대결을 의미하는 매우 위험한 짓이었다.
이 거대 무력 집단에 대항할 힘이 졸부가문 출신의 이쁜이에게 있었을 리는 만무했고,
당태종의 9남으로 태어나 치열한 태자 쟁탈전 끝에, 공손무기의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황제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고종이 뭘 믿고 이러한 겁나는 싸움을 시작했는 지는 모르겠느나,
적어도,
천하의 미인이란 미인은 다 모아 놓은 황궁의 주인이 사춘기 소년처럼 미모에 홀려 오로지 사랑만으로,
아버지의 후궁이었다는 결정적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한미한 가문 출신의 여자를, 후궁으로 들인
것으로도 모자라 황후로 세우는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자세한 사연이야 당사자들 밖에 모르겠지만,
고종 즉위 초의 당나라 조정은, 북위의 황족 출신으로 당태종 이세민의 처남이자 친구였고,
고종 옹립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공손무기를 비롯한 개국 공신들에 의해 거의 장악되어 있었으며,
그 발호가 심각하였다고 한다.
개국 공신 집단의 발호는 거의 모든 창업국가 공통의 병폐라고 할 수 있으나,
이넘들이 지 멋대로 하게 방치해서는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게 될 뿐만 아니라, 
수나라 꼴이 날 수도 있으므로 황제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상황이었다.

왕황후는 껄끄러운 관롱집단 출신이면서 애까지 못낳는 여자였으므로, 일찌감치 고종의 눈밖에 났을 것이고,
대타로 사랑한 소숙비 또한 현 조정과 아주 관련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얘들과 엮인게 전혀 없고,
문무 겸전을 추구하며 나름 강건한 철학을 지닌 이넘들이 반대할 것이 확실한 이쁜이를 내세워 숙청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평소 유약하다고 알려졌던 고종은 보기 보다는 정치투쟁에 재능이 있었는지, 황후교체에 반대하는
장손무기, 저수량, 우지녕 등 거물들을 몽땅 제거하였고,
관롱집단 출신으로는 이세적이 하나 남겨 놓았다고 하는데,
틀림없이 힘겨웠을 이 싸움에서, 강인한 성격과 비상한 두뇌를 가진 무후는 유용하고도 사랑스러운
도구였을 것이다.
이는 영명하다고 칭송이 자자했던 당태종도 이루지 못한 쾌거로서,
고종은 이렇게 강화한 황권을 바탕으로 백제, 고구려, 돌궐을 점령하고 통치하는 등, 당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와 전쟁을 한 군주가 될 수 있었다.
황후가 된 무후는 저질 건강의 고종을 돌보며, 수문제 시대처럼 황제와 황후의 협치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지만,
절대 권력은 아직 고종에게 있었고, 무후는 단지 대리자 내지 협조자에 머물렀다.

656년 기존의 태자를 폐하고 무후의 장남을 황태자로 세웠으나 곧 죽어 차남으로 대치하였다.
659년에 백제를 멸망시켰고
661년의 고구려 원정은 실패하였으나, 668년, 재수 끝에 마침내 고구려를 지도에서 지웠다.
아버지가 못한 일을 또 하나 이루었으니, 이때를 고종의 전성기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669년에 토번을 공격하였는데 이때 운명의 가르친링에게 패배하며 위세가 꺽이기 시작하였다.
670년 신라의 선공으로 나당전쟁이 시작되었고 토번의 가르친링에게 서역을 빼앗겼다.
672년 고종이 병으로 인해 정사를 보지 못하게 되자 무후가 본격적으로 대신 정치를 했으며,
675년에 수렴청정을 선언하였다.
676년에 나당전쟁이 신라의 승리로 끝났고,
678년엔 가르친링에게 대패하였다.
682년에는 돌궐 제2제국이 골돌록가한(일테리시칸)에 의해 부활했으며,
683년 고종이 죽은 후 태자인 3남 중종을 제위에 올렸으나 위황후를 비롯한 외척 세력이 대두하자,
폐위시키고 4남 예종을 즉위시켰다.
684년 이적의 손자인 이경업(서경업)의 난을 진압하고 이세적을 부관 참시하였다.
689년, 가르친링에게 대패하였다.
690년, 예종을 폐위하고 제위에 올라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수도를 장안에서 낙양으로 옮겼다.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 황제의 시대, 무주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691년에는 묵철가한이 즉위해 쿠차(사주)와 돈황(안서도호부)를 위협했다.
696년 거란의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자, 40만 대군을 파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황이 좋지 못했고, 돌궐의 지원을 받아 겨우 진압했다.
이때 거란의 반란을 틈타 이주하던 대조영을 추격하였으나 대패하였고, 발해의 건국을 허용해야만 했다.
698년 돌궐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바람에 거란이 재 독립하였고, 이로 인해 요동 및 요서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이에 열 받아 45만 대군으로 돌궐을 공격했으나 패하였다.
699년에 가르친링에게 40만대군이 거의 전멸하여 토번을 서쪽정부라 칭하며 대등한 관계를 인정했다.
705년 병으로 눕자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았고, 별 수 없이 3남 이현(중종)에게 양위했다.
이리하여 무주 시대가 끝나고 도로 당나라가 되었다.

무후의 외치를 보면, 이전 황제들이 정벌하거나 점령했던 지역을 모조리 상실하는 등 무능의 극치를 보였다.
나당전쟁에 패하여 옛 백제 지역의 지배권을 날렸고, 발해의 독립을 막지 못해, 만주와 요동도 고구려 정벌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거란의 독립도 막지 못했고, 돌궐도 부활했으며, 토번의 기르칭린에게는 연전연패 그것도 대패로 일관하여 서역의 지배권을 잃는 것은 물론 토번의 대등한 위상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내치 쪽에서는 양상이 달랐다.

무후는 태생적 한계가 너무 많은 황제였으므로 깔린 게 반대파였고, 상시적 반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기에,
죽지 않기 위해서는 비밀경찰 조직 등을 동원하여 공포정치를 실시하는 한편, 믿을 수 있는
친정 출신들을 우대하여 친위조직을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그저 그런 독재자의 삶을 살다가 어느 놈 칼에든 맞아 죽었겠지만, 무후는 달랐다.
적인걸, 장간지 같은 뛰어난 자들을 재상으로 등용하였으며,
사상 처음으로 과거제도의 완성이자 황권 강화책인 전시를 실시하여 인재를 등용하였다.
이때 등용된 인재들은 주로 중소지주계층 출신으로 북문학사라 불렸는데,
무후는 이들을 친위세력으로 삼아 내치를 다졌고, 나라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였다.
덕분에 무후의 치세에는 당태종 시대에 버금갈 정도로 생산력이 회복되었고,
일반 백성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이 북문학사 집단은 현종시기 개원의 치의 주역이 되었고, 당나라 최대의 전성기를 여는 기반이 되었다.
이 시기에 당나라 도자기가 그 특징을 확립하였으며,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일처다부제
시행되기도 하였다.

불세출의 걸물이었으나,
말년에는, 전쟁만 했다 하면 지고 되는 일 도 없고 해서 회한에 싸여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황후로서 장례를 치르고 묘비에 한 글자도 새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고 한다.

* 가르친링
가히 당의 천적이라 할 만하다.
자결하기 전까지 50여회에 달하는 당과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토번의 명장이었다.
병력의 차, 상대 장수 등과 관계없이 당과 싸우면 무조건 이겼다.
설인귀 등 고구려 원정의 영웅들을 비롯하여 당의 날고 기는 장수 모두가 가르친링의 밥이 되었고,
10배 이상의 병력 차이도 가르친링의 전공을 높여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가르친링의 이러한 활약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신라가 나당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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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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