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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2월 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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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35대 경덕왕, 신라의 마지막 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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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헌영, 성덕왕의 셋째 아들로,
형인 효성왕이 후사도 없이 2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여 왕위에 올랐다.
아마도 김순원이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고 경덕왕을 태제로 삼게 한 듯한데,
정권 막후 실세였던 외척들이 권력을 놓지지 않기 위해 꾸민 심모원려이겠으나,
권력의 도구로만 이용되었을 그 딸들의 비애와,
그 사슬에 숨 막혀했을 효성왕, 경덕왕 형제의 고뇌가 느껴져 씁쓸하다.
즉위 당시 왕비는 김순정의 딸이라는데,
김순원, 김순정, 둘이 형제가 아니었을까?

742년 왕위에 올랐고,
그 해에 일본에서 사신이 왔으나, 애들이 싸가지가 없었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듬해에 당의 책봉을 받았고 현종이 직접 풀이한 효경을 선물로 받았다.
왜 하필 효경이었을까?
외척들에게 시달리는 동방의 아이들이 불쌍해서 아비의 마음으로 선물한 것은 아닐까?
아무튼 이에 고무되었는지, 아니면 정치적 상황이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김순원이 짝 지워준 조강지처를 내치고 김의충의 딸을 왕비로 들였다.
효성왕이 당했던 것을 반대로 되갚아준 셈이었다.
이후 당에 더욱 밀착하였으며, 자신감이 좀 붙었는지 그 다음 해에 신궁에 제사 지내었다.
4년에 사정부, 소년감전, 예궁전 등 좀 북한 냄새가 나는 명칭의 기관들을 설치하여 왕권을 강화하였고, 자연재해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돌보았다.
10년에 불국사를 완공하였다.
12년에도 일본에서 사신이 왔으나 접견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일본 무시전략인데,
이에 열 받은 일본은 신라 침략 계획을 세우고 500여척의 배를 준비하며,
발해에게 협공을 요구하였으나,
발해는 예전의 신생 소국이 아니라 이미 만주를 지배하는 강국으로서, 문왕이라는 걸출한 임금을 맞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고구려의 후예이자 천손임을 자임하는 외왕내제의 국가였으므로,
일본에 대해도 이제까지의 외교적 수사를 버리고 자존심을 세우는 상황이였다.
신라를 남북에서 협공하자는 일본의 요구는 발해에게는 뜬금없는 이야기였고,
국가 이익에도 맞지 않았으므로, 그냥 무시하였다.
일본만의 단독 침공은 애초부터 무리였으므로 난감하였을 터인데,
침공을 계획했던 최종 책임자는 그 동안 신라에 쌓인게 많았는지, 단독으로라도 공격하자고 고집을 부렸으나,
이넘은 국내 정쟁에서도 현실감이 없었는지 결국 정적에게 피살되었다.
이렇게 되고나니 왜에서 더 이상 신라 침공을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이에 따라 침공계획도 흐지부지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역사의 고비마다 고개를 드는 쪽바리들의 정한론이 시작된 시기였다.

16년에는 관리 비용이 많이 드는 녹봉제를 없애고 상대적으로 간편한 녹읍제를 시행하여 국가 운영비를 절감하였고,
제도·지명·관직 등을 당나라식으로 개편하는 한화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여 왕권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듬해에는 휴가일수가 60일이 넘은 관리를 해임하는 등 직무감찰을 강화하여 경비를 절감하였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왕자의 출생이라는 경사가 있었다.
이후에도 자연재해와 싸우며 유교이념에 의한 통치를 계속하였다.
762년 23년간의 재위를 마치고, 40대 초반의 아까운 나이로 서거 하였다.
틀림없이 많이 사랑했을 8살짜리 아들이 눈에 밟혀 저승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경덕왕은 형처럼 외척 세력에게 휘둘리지 않고,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여
수많은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신라를 융성하게 하였다.
불국사를 비롯한 여러 절을 지었고 황룡사의 종을 주조하였으며,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리는 봉덕사 종의 주조를 시작하였다, 
이는 불교세력을 이용하여 진골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강하였으나,
어찌되었건 불교가 융성하였고 향가 작가이기도 한 월명사, 충담사 등이 이름을 얻었다.
당나라와 교역을 활발히 하였고 산업 발전에도 힘썼으며, 영토도 확장하여 이 시기에 비로소 황해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였다.
역대 최강, 최고의 전성기였다.
좀 더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신라의 마지막 명군이었다.

왜들 그러는지 알 수는 없으나 신라 전성기의 임금들은 다들 일찍 죽었다.
그 바람에 전성기가 오래가지 못하였고,
귀족세력의 대두를 막을 길이 없어 후대의 혼란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장수왕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만이라도 살아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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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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