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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2월 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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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56대 경순왕, 신라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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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
피살된 경애왕과는 6촌간으로 이찬 효종의 아들이고 헌강왕의 외손자이다.
견훤에 의해 임명되긴 하였으나,
어쨌든 김씨이므로 박씨에게 넘어갔던 왕통을 되찾은 의미가 있다.
이러한 까닭에,
경애왕 시기 김씨 중심의 진골귀족들이, 친 고려파인 박씨 왕에 대항하여 친 백제파를 구성하였고,
이들이 견훤과 내통하여 박씨 왕을 죽이고 김씨를 임명하게 하였다는 설이 존재하는데,
그간 골품귀족들의 골통스러움에 미루어 가능성이 충분한 이야기기는 하나, 
물증이 없다.

927년 즉위하였는데,
견훤은 지가 세운 왕인데도 봐주지 않고, 연속적으로 변경을 침범하여 성을 빼앗고 곡식을 베어갔다.
이에 맞선 장수들은 계속 패배하고 항복하고.
결국 신라는 견훤의 식량 창고 겸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하였으며, 영토도 옛날 사로국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대로 망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상대적으로 신라에 우호적이었던 고려가 후백제를 누르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고창전투에서 왕건이 크게 승리하였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이후 신라 조야의 민심은 유화책을 쓰는 고려 쪽으로 크게 기울었고,
931년 왕건이 친히 경주를 방문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신라의 호족들이 모두 고려로 귀부하였다.
그리고, 신하와 백성이 없는 왕을 왕이라 할 수 없으므로, 왕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천년사직을 들어 고려에 투항하였다.
귀부 당시 아들 마의태자를 비롯한 일부 신하가 극렬히 반대하였다고는 하나, 별 의미 없었고.
935년 11월의 일이었다.

약 8년간 근무하고 은퇴한 경순왕은 당시 30대 후반의 나이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퇴직금으로 왕건의 두 딸을 하사받고, 벼슬도 받고, 땅도 받고… 온갖 특혜를 받았으며,
고려 초의 혼란한 정국에 개입하지 않고 몸을 사린 덕에, 80 너머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히 눈치보기의 달인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이 양반은 죽어서 희한하게도 무속신이 되어 지금까지도 무당밥을 받아먹고 있다.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해 준 견훤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고마워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자손들인 경주 김씨는 고려의 주요 귀족 가문이 되어 대대손손 떵떵거렸는데,
그 중 유명한 자들로는 김방경, 김시민, 김구, 김일성 등이 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도 그의 자손이었는데, 그 덕분에 김부식의 살벌한 유교적 명분론에 난도질을
당하는 것도 피했다.

아주 운이 좋은 양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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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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