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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1월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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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 2대 무왕, 위대한 정복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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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무예, 고왕의 장남으로 719년 즉위하였다.

고구려의 대무신왕과 비슷한 역할을 한 정복 군주로서,
즉위 후 세력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하여 옛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을 회복하였다.
유목의 땅에서 영토 확장은 성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부족을 복속시키고 약탈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발해의 확장에 주변의 부족들은 비명을 질렀을 것이고, 당나라를 긴장시켰을 것이다.
당나라는 중간에 끼어있는 거란족 때문에 발해에 대한 직접 공격이 어렵자,
발해 후방의 상당한 세력을 지닌 흑수 말갈을 이용하여,
전가의 보도, 이이제이를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흑수말갈, 흑수 지역에 사는 말갈.
얘들은 또 무슨 말갈일까?

말갈은 일종의 비칭인데,
우리가 한반도 북쪽의 종족들을 통칭하여 오랑캐라고 부르는 것처럼,
중국 놈들이 지들 동북방에 사는 족속들을 싸잡아서 부르던 호칭이었다.
흑수말갈은 발해의 동북방, 흑룡강 쪽에서 살아가던 반농반목의 족속들이었는데,
이들이 나중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여진으로 이름을 바꾸고 만주의 패자까지 되지만,
이 당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단지 지역에서 나름의 세력을 가지고, 발해가 확장하는데 상당한 저항세력으로 기능하던 집단이었다.
당이 발해를 견제하기 위한 이이제이의 도구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배후 적은 항상 신경 쓰이기 마련이고, 개국 초창기의 발해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었으므로,
무왕은 동생 대문예에게 흑수말갈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황당하게도 대문예는 형의 명령을 거부하고 당으로 도망가버렸다.
왜 그랬을까?
대문예는 어려서부터 당에 숙위하였으므로 친당파였을 가능성이 크므로, 당의 정책에 반하는 행동에 반대했을 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반역까지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는데,
기록이 없어 조심스럽긴 하나,
당나라놈들이 무왕을 견제하기 위해 대문예와 무슨 밀약을 맺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뭐가 어찌 되었든, 무왕은 동생의 배신까지 맛보게 만든 흑수말갈을 가만두지 않았다.
외삼촌 임아를 보내 기어이 복속시켰고,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대문예의 처벌을 요구하는 한편 당과 대립하는 거란을 지원하였다.
당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한동안 수세에 몰리던 당은,
거란을 완파한 후 자신감을 회복하여 다시 고자세로 나오게 되었는데,
이러한 정세변화에 자극을 받았는지, 흑수말갈은 다시 당과 연합하여 발해에 대항하였다.
이에 무왕은 소극적인 방어 대신 적극적인 공격을 택하였고,
장문휴를 보내, 당이 공격해 올 경우 전진기지가 될 등주를 공격하게 하였다.

장문휴.
해적들을 끌고 갔다는데, 이 겁 없는 해적들은 등주 성을 함락시키고 자사까지 죽인 후 귀환하였다.
약탈도 좀 했을 것이다.

무왕은 해상공격만 한 것이 아니라,
군대를 파견하여 거란, 돌궐과 연합군을 구성하였으며, 당군을 크게 격파하기도 하였다.
이에 당황한 당나라는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발해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그 대가가 대동강 이남을 신라 영역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무열왕 김춘추와 당태종 이세민 간에 맺었던 영토분할 약정이 이때 비로소 이행된 셈인데,
이걸 대가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신라는 병사를 5만이나 파견하며 당의 요구에 응하였다.
그런데 겨울이라 동사하는 병사가 속출하여, 공격해 보지도 못하고 철군하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의지가 없었을 것이다.
발해가 훌륭한 방파제 역할을 해주는 게 오히려 든든하고 고마운데, 뭐 하러 실익도 없는 일에 목숨을 걸겠는가?
그저 영토에 대한 당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고, 발해에게도 대동강 이남은 아예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대군을 동원하여 실력 과시만을 한 것일 것이다.
신라는 국경지대에 장성을 쌓는 것으로 마무리 하였다.

신라야 뭔 짓을 하건, 무왕은 그 이후에도 하북성을 공격하는 등 공세를 이어갔고,
흑수말갈은 그 기세에 눌려 찍소리도 못하였다.
또한 등주를 공격한 장문휴를 방어한 당의 사령관이, 배신한 동생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객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당 현종.
개원의 치를 이룩한 위대한 현군의 표상이지만, 발해라면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의 최대의 정적은 무왕이 아니었을까?

734년에 접어들면서 정세가 또 한 번 변하였다.
그동안 방파제 노릇을 하던 거란이 완전히 망해 버렸을 뿐만 아니라, 든든한 동맹인 돌궐도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무왕은 더 이상의 공격은 무리라고 판단하였고, 당과 관계개선을 모색하였는데,
발해에 신물나게 당했던 당은 결국 이에 화답하여, 평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정치적 감각이 탁월하였던 임금이다.

만주 지역의 실력자 흑수말갈을 초장에 효과적으로 제압하여, 지역의 패자로 자리매김하였고 영토를 크게 넓혔으며,
전쟁과 평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국제적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위대한 군주였다.

연호는 인안, 시호는 무왕, 능호는 진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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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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