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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7일 (토요일) 2:24 오전
오피니언사설/칼럼고려 : 9대 덕종, 똘똘한 아이

고려 : 9대 덕종, 똘똘한 아이

​왕 흠.
위대했던 아버지가 40세가 되던 1031년, 저승사자의 이른 방문을 받는 바람에,
요즈음이라면 학원 다니느라 바쁠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야 했다.
이 나이면 거란의 동갑나기 흥종 처럼 모후가 섭정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이 소년은 워낙 어린 시절부터 똑똑하고 결단력이 뛰어나 바로 친정을 하였고 선정을 펼쳤다….는데,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야 없겠지만,
외척 세력의 수장격인 외조부 김은부는
긴박했던 몽진 길에서 불과 며칠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바보들에게 시달리던 현종에게,
유일하게 왕 대접을 해주었던 공주 절도사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 하루의 고마움을 잊지 못했던 현종은 그의 딸 셋을 모두 왕후로 맞아들였는데,
그 딸들은 기특하게도 줄줄이 아들을 낳아주어 아버지의 등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러나 호족 출신이 아니었기에 그 세력 자체는 별 볼일 없었는데, 그나마 일찍 죽어버렸고,
그 딸들도 명이 짧아 이미 사망한지라 덕종 즉위 시에는 마땅히 섭정을 할 만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홍안의 소년이 친정을 해야 했던 진짜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찾으려고 하면 못 찾을 것은 없었을 것이나,
당시의 정치 지형 상 누구 한 사람이 독주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는지,
어떤 의미에서는 도박과도 같은, 16살짜리 왕의 친정이 당연시 된 듯한데,
비록 불안한 출발이었으나,
다행히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중신들은,
입지전적 인물인 현종과 더불어 고락을 같이한 전우들이자, 새로운 고려를 만들어 낸, 능력 있는 인물들이었고,
왕이 된 아이도 상당히 똑똑했기에 큰 무리 없이 나라가 굴러간 듯하다.
그런데​ 현종이 승하하자 공교롭게도 평생의 적수였던 거란의 성종도 바로 따라 죽어,
그들의 투쟁은 이제 16살짜리 아들들에게로 이어지게 되었다.

​* 거란 성종 .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라 대단한 어머니로부터 착실히 천자 수업을 받았고,
자신의 능력 또한 출중하여, 조폭 같은 유목민 출신들이 제멋대로 설치던 거란의 조정을 일신하였으며, ​영토를 넓히고 법치를 확립하였다.
이렇게 거란의 국가체제를 완비한 영명한 군주였으나, 유독 고려에만은 힘을 쓰지 못하여 명목상의
종주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는 무려 49년간 재위하며 거란을 명실상부한 황제국 요로 만든 명군이었으나, 
말년에는 긴장의 끈이 풀렸는지 향락에 탐닉하였고, 당뇨 합병증으로 오래 고생하다가 사망하였다.

 ​거란 조정은 나름 위대했던 저희들 천자가 사망하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압록강 유역에 부교를 설치하고 보루를 쌓았는데,
이에 고려는 문상도 할 겸 사신을 파견하여 부교의 철거와  억류중인 고려인들의 송환을 요구하였다.
거란은 지들 천자의 성스러운 장례를 아랑곳하지 않는 이 발칙한 고려의 요구에 묵살로 응답하였고,
고려는 거란의 천적답게  외교 단절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고 변경의 요새를 손보더니,
내친김에 압록강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정면 승부를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러한 고려의 움직임에, 또 고래 싸움에 끼일 위험에 처한 동 여진인들이 고려로 투항하기 시작하였고, 성종 사후 혼란에 빠진 거란 조정을 피해 거란인들까지 고려로 투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거란 조정은 고려에 항의하고 천리장성 축성의 중단을 요구하였으나,
이번에는 고려가 묵살 하였다 .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이러한 갈등은, 
명목상이긴 해도 종주국의 입장인 거란에게 더 큰 부담이었으므로,
황제국의 체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부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거란은 결국 군대를 움직여 동쪽 끝인 정주로 침입하였다.
비록 새로운 침공로이긴 했으나,
거란의 침입이라면 이골이 난 고려군은 이놈들을 가볍게 격퇴하였고, 천리장성 축성에 박차를 가하여
1년 사이에 대부분의 성을 완성하였다.

덕종은 거란의 동갑나기와 툭탁거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치에도 제법 업적을 남겼는데,
과거시험인 국자감시를 시행하여 지방인재 등용의 폭을 넓혔으며,
현종 때부터 편찬하기 시작한  7대 실록을 완성하는 등,
중, 고생정도의 어린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왕 노릇을 썩 잘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명이
짧았다.
20살을 서너 달 남겨놓고 병이 들었는데, 끝내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였고,
자식이라고는 젖먹이 딸들밖에 없었으므로, 동복 동생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재위는 고작 3년, 애석하지 않을 수 없다.

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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