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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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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18대 의종, 끔살되다

왕 현
어려서부터 놀기를 좋아하여 부모에게 걱정을 많이 끼치는 자식이었다고 한다.
아들이 하나라면 모를까 다섯이나 되었으므로,
엄마는 반항기 많은 맏아들 보다는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둘째에게 마음이 더 갔던 모양이나,
정정불안이라면 신물 나게 겪었던 아빠와 유교적 명분론을 강력히 주장하는 스승의 지원에 힘입어, 1146년 왕되기 딱 좋은 나이인 20세에 왕위에 올랐다.    

평생 무력감에 치를 떨었던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 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역대 고려왕의 화두이기도 한 왕실의 권위 확립과 왕권의 강화를 위해 노력한 듯한데,​
당시 조정은 언제나처럼 문벌 귀족들이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고,
전대에 있었던 묘청의 난으로 왕의 입지가 극도로 축소되어 버린 상황이었으므로,
갓 성년에 도달한 청년왕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시작도 해보기 전에 좌절하기에는 인간 왕 현이 가지고 있는 반항기가 녹녹하지 않았다.

시문에 능하고 활 잘 쏘고 승마, 격구 실력도 상당했다는 그는, 왕위에 오른 후 전공을 살려
무신들과 친하게 어울렸으며,
정중부, 이의방, 이 고, 이의민 등의 인재를 발탁하여 친위군을 강화하는 한편,
말 잘 듣는 환관들과 궁 안에 상주하며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일종의 비서관인 내시 등의
인물들과 친분을 쌓아 친위세력을 구성하였다.
그의 놀기 좋아하는 성품이 한 몫 하였을 것이다.
비록 인재풀이 협소하여 구성 인물들의 질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으므로,
이 정도로 시작하여 겸손하게 정치를 배우고 힘을 길렀더라면, 아버지 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왕노릇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반항기가 많은 천성 탓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반대로 즉위에 어려움을 겪었던 자격지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의종은 그렇게 사려 깊은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신분이 낮은 자들과 어울리며 격구에 심취하고 환관들을 우대하는 등 유학자들이 싫어하는 짓을
빠짐없이 하는 제자를 본 정몽주의 선조 정습명은
폭풍 같은 잔소리를 쏟아내며 고명대신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려고 하였고,
간관들 또한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에 충실하여 왕의 행동에 여러 가지 제동을 걸었는데,
부모 말도 안 듣던 애가 왕까지 되어 남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을 리 없었으므로,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게 되었다. 
신하들은 시위 및 출근투쟁을 불사하며 왕의 의지를 꺾고자 하였고, 마음에 들지 않는 왕의 측근은 기어이 축출하였으며,
반란이라도 발생하면 왕의 실책이라고 꾸짖기도 하였다.
좀 과한 면이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틀린 소리도 아니었으므로 좀 반성하고 개선책을 찾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왕은 이게 다 왕권이 약해 신하들이 임금을 업신여겨서 발생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는지,
왕도 태업 및 파업으로 신하들에게 맞서는 한편, 친위세력을 더욱 강화하여 그들하고만 어울렸다.
하지만 친위세력이라고 해봐야, ​
왕과 이상을 공유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그런 거창한 인물들로 구성된 집단이 아니라,
그저 배짱이 맞고 아첨에 능한 인물들이 주를 이루었으므로, 별 대책 없이 그저 놀기만 하였을 것이다.​
격구 광이었다고 하니 격구 스타플레이어들과 술이나 한잔하며 신세타령이나 하지 않았을까?
비록 방법은 찌질하였지만 줄기차게 신하들과 투쟁을 이어가던 의종은 제법 내공이 쌓였는지,
스승 정습명을 조정에서 축출하는 뜻밖의 개가(?)를 올리게 되었다.
정습명으로서는 제대로 된 왕을 만들겠다는 인종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자에게 애프터 서비스를 좀 과할 정도로 베푼 것이었으나,
이 못된 제자 놈은,
정습명 또한 문벌 귀족의 일원이므로 왕을 무시하여 그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 는지는 모르겠으나,
스승의 질책에 넌더리를 내버렸고, 같잖은 정치력을 발휘하여 제 복을 걷어차 버렸다.​
정습명은 이렇게 어떨결에 조정에서 밀려난 후 분사하였으나,
왕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야 말겠다는 간관들의 남다른 신념은 여전하여, 사사건건 왕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고, 그 좋아하는 격구 관람을 중지시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왕도 제법 노련해져 간관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몇 년 후 시중자리에 있던 외조부 임원후마저 사망하면서, 더 이상 조정에 임금을 제어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신하가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의종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저하고 싶은 짓을 마음껏 하게 되었고.

​왕은 우선 모후 공예태후를 절간에 안치시키는 한편, 왕위를 놓고 다투었던 동생 대령후를 유배시키는 정치보복을 하였고,
측근들을 대거 등용하여 소망하던 왕권을 강화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민생을 살피고 ​제도를 개혁하여, 미래의 먹거리 창출을 위해 힘을
쏟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닮았는지 풍수, 도참, 점복에 빠져 들었으며, 
열심히 절을 지어 외형상으로나마 불교세력을 복원시켜 주었고, 무엇보다 사치와 향락에 탐닉하였다.

문벌 귀족들 ​은 혀를 끌끌 차기는 하였겠으나, 내 새끼도 아니고,
왕이 그저 놀기나 좋아할 뿐, 무슨 대단한 이상을 가지고 귀족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개혁 따위를
실천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스승이나 외할아버지처럼 책임감이나 애정 따위가 있었을 리 만무한 그들은,
​괜히 나서서 욕먹고 가문을 위험에 빠뜨리는 짓을 하기 보다는 그냥 방치하였다.
국가 원로들의 방관 속에 소원하던 권력을 손에 쥐기는 하였으나,
그 왕권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던 철없는 왕은 그저 놀기만 하였고,
역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그의 추종자들은,
호가호위하며 매관매직과 부정 축재에 열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렇게 한 몇 년 지속되자 동북아의 부국 고려는 안으로부터 골병이 들게 되었고, ​
배부르고 등 따습던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부역 나간 남편의 배를 채우기 위해 머리칼을 팔아야 했던 여인네의 이야기가 생겨난 것도 이 시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의종은 간관들과의 약속대로 격구 관람을 안 하는 대신, 주변에 모인 쓰레기들과 어울려 시를 지으며 놀자판을 이어갔는데,
이렇게 되자 시 짓는 재주가 있을 리 없던 왕년의 스타플레이어 출신 무신들은 졸지에 실직 아닌 실직 상태가 되어,
단순 호위병이나 잔치 심부름꾼의 역할을 해야 하는 한심한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놈의 잔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렸을 뿐만 아니라, 경치 좋은 곳들을 찾아다니며 놀았기 때문에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아,
호위를 담당하는 무신들은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고 하니, 욕 나왔을 것이다.
당시 내시와 환관들의 권력은 아주 강력하여 왕명이 고자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들은 특별한 능력이나 업적 없이 그저 아첨으로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은 저렴한 인격의
소유자들이었으므로 겸손이라는 것을 몰랐고 그 권력의 행사도 치졸하여,
왕의 권력기반의 한 축을 이루는 무신들을​ 공공연히 무시하는 짓을 다반사로 하였다.
의종도 문, 무신간의 갈등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던 듯하나​, 늘 그렇듯이 별 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무신들의 분노는 임계점을 향해 끓어오르고 있었다.

1170년 가을 악동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다가 마지막 놀이터를 보현원으로 잡은 의종은, 
그동안 시 짓기 놀이에서 소외되어,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끌려만 다니느라 열을 잔뜩 받은 무신들이 신경 쓰였는지​,
출발하기 직전 갑자기 일종의 무술 경연 대회인 수박희를 열어 무인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인재도
발굴하고자 하였다.
일종의 보상이었으므로 모두가 즐거워 했 …는지는 알 수없으나, 
오랜만의 무신들만을 위한 잔치라 계급장 떼고 모두 참가하였는지,
대장군 이소응도 출전하였는데, 
이 반백이 넘은 장군 각하는 마음만 청춘이고 몸이 안 따라주어 그랬는지 아니면 대회의 흥을
돋우기 위해 그리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
새카만 후배인 젊은 군졸에게 쫓겨 도망가는 희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였다.
매우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으므로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웃고 즐겼을 것이나,
이 운명의 날, 
주연을 맡게 되는 젊은 문신 한 뇌는 내기를 걸었다가 졌는지 아니면 무신들을 위한 잔치가 아니꼬와
주사를 부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아버지뻘인 대장군의 앞을 가로막고, 뺨을 때리며 욕지거리를 하였다.
머리가 허연 대장군은 섬돌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렸고.
대장군은 품계가 종 3품으로 정 3품 상장군의 바로 아래 자리이므로 요즘으로 치면
별 서넛 단 군단장 쯤 되는 지위이고,
평소에 임금과 허물없이 지내는 문신인 5품관 내시는 실세  청와대 비서관 정도라 할 수 있으므로,
이는, 겁 대가리 없는 젊은 청와대 비서관 놈이 연세 지긋한 군단장의 따귀를 날린 것과 비슷한
기막힌 상황이었다.
이런 아연실색할 만한 장면을 보고도 개념 없는 의종은 한 뇌를 질책하기는커녕,
주변의 문신들과 함께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하였고.
이 꼴을 본 무신들은 당연히 크게 분노하여 이의방, 이 고 등은 칼까지 뽑으려고 하였으나,
상장군 정중부는 일단 자제를 시키고, 한 뇌의 멱살을 잡아 임금 앞에 패대기쳐 버렸다.
정중부의 당시 나이가 60대 중반이었다고 하는데,
한 뇌가 약골이었던 모양이다.​
사태가 이쯤 되자 멍청한 왕도 심각성을 눈치 챘는지 정 중부를 좋은 말로 달랜 뒤 보현원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이랬으면 나들이고 뭐고 일단 집구석으로 돌아갈 노릇이지, 평소에도 자주 가는 보현원에
뭐 주어 먹을 게 있다고,
아무튼 이것이 의종의 마지막 패착이었다.

차별에 대한 불만으로 이미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던 정중부, 이의방, 이 고 등 무신들은
낮에 있었던 싸대기 사건으로 더욱 확실한 명분을 얻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칼을 뽑아 보현원까지 수행했던 문신들의 목을 따버렸다.
싸가지 없는 한 뇌는 이 고에 의해 왕 앞에서 목이 잘렸고,
예전에 정중부의 수염을 태워 무신들을 모욕했던 또 하나의 싸가지이자 당대의 실세였던,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은 살육의 현장인 보현원에서는 어찌어찌 탈출하였으나,
반격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대책없이 개경 인근의 산에 동생과 함께 숨어 있다가
하인 놈의 밀고로 발각되어 육신이 분리되었다.
죽은 지 오래 된 김부식도 무덤에서 끌려나와 부관참시 되었고.
의종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고 하는데,
칼 든 놈들 대부분이 손수 발탁하여 키운 금군들이고,
그들의 수장 정중부는 2대에 걸쳐 왕의 총애를 받으며 무관 최고위직인 상장군까지 오른
측근 중의 측근이었으므로,
지금이야 성질나서 저 지랄이지만, 나중에 잘 달래주면 수그러들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 …는지는 모르겠으나,
뭐가 되었건 그의 무신경이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

무신 정변은 무슨 거창한 이념보다는 처우에 대한 불만, 원한 등이 쌓인 금군들에 의해 촉발되었고,
그들보다 더 못한 처지였던 다른 무신들과 일반 병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 추진력을 얻은 일종의 군란이었으므로,
그 주체들도 정권을 잡기 위해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문신들에 대한 증오를 무차별적으로 
표출하였다.
반면 문신들의 대응은 김돈중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어이없을 정도로 찌질하였는데,
정변이 워낙 전격적으로 발생하였고,
다른 부대의 무신들 및 일반 병사들은 물론 김돈중의 하인처럼 하층민들까지 폭발적으로 호응하여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명분 싸움이 아닌 일방적인 살육을 당하는 바람에 속수무책이었다….라고 해석하기엔,
그동안 고려를 지배해 왔던 그들의 명성이 너무 무색해진다.
잘 이해가 되진 않지만 어쨌든,
신화와 같던 문신 체제가 의외로 허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 군란의 주체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혁명으로 나아가,
이래저래 거추장스러운 의종을 폐위하여 거제도에 안치시켰으며,
문신들을 옥석을 가리지 않고 말살시켜 버렸다.

우리 역사에서 예를 찾기 쉽지 않은 이러한 지배세력의 완전한 교체는 체제의 변혁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임금의 지위는 얼굴마담으로 고착되었고, 
칼끝에서 정권이 창출되는 본격적인 중세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삶을 팍팍하게 만든 문신들의 몰락을 통쾌하게 바라보며 대리만족을 즐겼던 백성들은,
적나라한 폭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중세의 야만성에 그대로 노출되어 구관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거제에 귀양 가 있던 의종은,
무신들에게 항거하여 김보당이 군사를 일으켰을 때 경주로 이동하여 재기를 꿈꾸었으나,
이의민에게 패하여 그대로 연금 되었으며,
제 2의 김보당의 난을 두려워한 혁명주체들에 의해 얼마 후 처형되는 신세가 되었다.
마지막 술잔을 올린 이의민은 필살기인 등뼈 꺾기를 시전하여, 천민인 자신을 발탁하고 중용하였던
옛 주군의 목숨을 거두었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껄껄껄 웃었다고 한다.
고려가 건국된 지 255년째인  1173년의 일이었고,
고려 전기의 마침표가 찍힌 날이었다.

향년 47세, 24년 6개월간의 재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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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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