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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11월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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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무신들의 시대, 포악한 이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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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이 전주로, 이 성계의  6대조 백부가 된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대장군이고 어머니가 정승집 딸이었으므로 천한 신분은 아니었으나,
고려의 뿌리 깊은 무신차별은 그를 분노하게 하였고 혁명가로 이끌었다.

한 뇌가 지랄을 떨 때 그의 직책은 이 고처럼 견룡행수로서 하급 지휘관에 불과하였으나,
친위군인 견룡군 병사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정변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정변의 발의자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이 고, 채 원등과 함께 칼을 들고 혁명의 실무를 수행하면서,
문신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들은 서리까지도 죽여야 한다는 등의 과격한 주장들을 쏟아내었다고 하는데,
그 공인지, 명종이 즉위한 후  벽상공신이 되었고 고속 승진하여 정권의 정점에 근접하였다.
그러나 같은 공로로 공신이 된 이 고에 비해 실제 권력에서는 약간의 손색이 있었는데,
다행히 또 다른 혁명 동지 채 원의 도움을 받아 이 고를 제거하고 명실상부한 집권자가 될 수 있었다.

이의방, 이고 등과 함께 무신정변을 주도했던 채원은, 
의종이 정중부를 암살하려고 하자 의종을 시해하려고 했던 인물로서,
면밀한 사고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인간형이었던지 벽상 공신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는 혁명동지들의 갈등의 중간에 끼어 고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의방의 편을 들어 공을 세웠는데,
사후 보상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다시 이 의방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제거되었다.

노 장군들과 이 고에 이어 채 원까지 제거하여 내부 권력 투쟁을 마무리 한 이의방은,
정중부가 얼굴 마담으로 있는 중방을 막부로 삼아 본격적인 무인집정 시대를 열었고, 
의종의 애첩이었던 미인 무비의 사랑까지 얻어,
남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인생 최고의 상태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그가 구축한 이 생소한 체제가 안착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여,
수 많은 바란들이 뒤를 이었다.

김보당은 명종 즉위와 함께 간관으로 등용된 무신 정권에 협조적인 문신이었는데,
칼 든 자들의 세상에서 간관들의 처지는, 정변 이전의 무신들처럼 형편없었기에,
여러 가지 비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비정신의 총화라는 간관의 긍지를 잃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김보당은 겁도 없이 정권의 실세인 의의방의 형 이준의 등의 무신들을 탄핵하였는데,
무신들의 하는 짓이야 뻔하였으므로,
김보당의 말이, 말이야 맞는 말이었지만, 명종에게는 그의 손을 들어줄 힘이 없었다.
얻은 것도 없이 칼든 놈들의 원한만 사게 된 김보당은 여러번의 좌천을 거쳐 동북면 병마사가 되었는데,
이래저래 열받은 김보당은,
무신정권 타도와 의종의 복위라는 다소 반동적이기는 하나 파괴력 있는 슬로건을 들고,
병법에 밝은 고려의 문신답게 동서남북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렸으며,
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의종을 확보하여 경주에 제 2전선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군사적인 능력은 별로였는지 이의방이 보낸 이의민과 박존위에게 패하였고,
생포되어 개경 저잣거리에서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 자가 죽으려면 곱게 죽을 노릇이지 죽기 전에, 고려의 모든 문신들이 자신의 동조자라고,
반란을 정당화하는 바람에 애꿎은 다른 문신들까지 대량으로 학살되었다.
의종도 금강야차라 불리던 이의민에게 등뼈가 꺾여 살해 되었고.
민폐가 많은 인생이었다.

정치력이 별 볼일 없었던 무신들에게 의종은 심복지환이나 다를 바 없었으므로, 제거가 필연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대에 왕이 가지고 있던 상징적 의미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왕의 시해는 엄청난 역풍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역대 왕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왕실의 친위 예비 세력으로 양성되곤 했던 사원 세력은,
이에 크게 반발하였는데,
교종의 전통적인 왕즉불 사상으로 보면,
절을 열심히 지어 주던 의종을 참살한 무인들은 부처에게 해를 입힌 마구니와 다를 바 없었으므로,
그들은 마도척결을 기치로 궐기하였다.
귀법사의 승려 100여 명이 북문으로 침입한데 이어, 약  2000여 명의 중들이 떼 지어 성문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자,
열 받은 이의방은 개경 인근의 절들을 초토화시켜버림으로서 친왕 세력들에게 경고하였는데,
그 경고가 무색하게 이번에는 그동안 얌전히 있던 서경유수 조위총이 반란을 일으켰다.

조위총은 의종 말에 병부상서를 지내다 서경 유수로 나가 있던 인물로서,
무신 정변이라는 경천동지할 만한 사태가 일어나든, 김보당이 웅대한 전략을 세우든 말든,
나 몰라라 하며 요충지 서경에서 쥐 죽은 듯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의종이 살해되자 갑자기 격문을 돌리고 반란을 주동하였는데,
얼핏 보면 왕을 시해한 간악한 무리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떨쳐 일어난 의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그동안의 행적이나 그 이후의 행동들이 별로였다.
좀 삐딱하게 해석을 해보면,
군사력이 밀집되어 있는 북쪽 지방의 특성상 서경은, 약간의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제 2의 김보당이 될 수 있는 지역이었고,
김보당의 난이 끝난 후 대뜸 개경의 문신들부터 학살했던 것처럼,
행동에 정통성이나 정당성 같은 정치적 명분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없는 개경의 무신들이,
북쪽의 문신들을 곱게 놔둘 리는 없었고, 뭔가 조치를 취할 것이 분명한데, 
그 조치라는 것이 우호적일 리는 만무하였다.
따라서 조위총은 이에 위협을 느꼈고, 자구책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하는데,
자세한 속사정이야 뭐가 되었건,
서경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만 하면 바로 호응하는 경향이 있는 절령 이북의 성들을 접수하여 기세를
올린 조위총은,
이의방이 파견한 윤인첨을 급습, 대파하였고 개경까지 육박하여 역사를 이루는가 했으나,
최고 지도자 보다는 장군에 더 잘 어울리는 이 의방이,
그 시기까지 조정에 근근이 남아 있던 서경 출신들을 마저 도륙한 후, 직접 출전하는 바람에 대패하고 말았다.
이의방에게 쫓겨 되돌아간 조위총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농성을 시작하였고,
북방의 요충 서경은 언제나처럼 쉽사리 함락을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기세등등했던 이의방은 추위에 떨며 성 주위를 뱅뱅 돌 수밖에 없었고,
빈틈을 노린 조위총의 공격에 패배하여, 엉덩이를 걷어차인 똥개처럼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위총 아들의 목이나마 들고 갈 수 있었기에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어쨌든 패전이므로 집권자가 직접 출전한 토벌전에서 받은 성적표 치고는 초라하였는데,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명종은, 이의방의 입지가 약화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는지,
그를 좌승선으로 승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었다.

태자의 장인이 되어 더욱 권력이 강화된 이의방은 자신의 콧등을 물어 뜯은 조위총을 끝장내기 위하여 대대적인 토벌군을 준비하였는데,
그동안 이의방의 전횡을 눈꼴시게 바라보던, 얼굴마담 정중부의 아들 정균은 이의방이 조위총마저
토벌하고 나면 더 이상 그 위상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 자명하였으므로,
조위총이야 어찌 되든 일단 이의방을 제거하려 하였고, 마침 기회가 생기자 조참이라는 중을 시켜
암살해 버렸다.

무비가 꿈자리가 사나우니 오늘 만은 나가지 말고 집구석에 쳐 박혀 있으라고 했다던데…
아무튼 그의 4년 남짓한 영화는 이렇게 어이 없게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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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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