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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1월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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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무신들의 시대, 늙은 권력자 정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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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들의 대부로서 정변을 진두지휘 했던 정중부는 벼슬이 계속 높아졌으나,
칼든 젊은 놈들이 하도 설쳐대는 통에 실권이 없는 속빈 강정 꼴이 되고 말았는데.
기특하게도 아들놈이 그 지독스럽던 이의방을 잡아준 덕분에 70이 다 된 나이에 명실상부한 집권자가 될 수 있었다.

살육밖에 모르던 과격한 놈들을 대신하여 원숙한 나이에 새로이 집정이 된 정중부가 국가를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은,
현재 진행 중인 조위총의 반란과 그로 인해 들떠버린 민심 그리고 피폐해진 민생 등이었을 것이나,
나이만 많았지 국정 철학이니 사명감이니 하는 것들은 죽은 젊은 놈들 못지않게 빈약했던 그는,
우선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 하는데 열을 올렸다.

조위총의 난은 정치 투쟁이라기보다는 묘청의 난 이후 소외되었던 서경 지역의 지역민들이
차별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란의 성격이 강했고,
이의방이 개경에 근근이 남아있던 서경 출신들을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도륙하는 바람에
악화된 면도 있었다.
따라서 명종은 이의방이 암살 된 것을 기화로 조위총을 회유하려고 하였으나,
조폭같은 무신들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허수아비 왕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조위총은
항거를 계속하였다.
별 소득도 없이 임금의 체면만 손상되고 만 것이다.

정중부는 기왕에 이의방이 준비한 병력이 있으므로 윤인첨과 두경승에게 토벌을 명하였고,
무용이 이의민 못지않았던 두경승은 도중에 걸리적거리는 놈들을 때려잡으며 진군하여
마침내 평양성을 포위하였다.
하지만 평양성은 여전히 난공불락이었으므로, 윤인첨은 지구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는데,
반면 성에 갇혀 줄어드는 창고의 식량을 공포의 눈으로 바라만 봐야했던 조 위총은,
항복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금나라에 사신을 보내 의종이 신하들에게 시해되었음을 알리고, 
원병을 청원하였다.
이는 나라를 팔아먹는 짓이었고, 
금의 입장에서는 고려를 집어삼킬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었으나,
빠른 성장만큼이나 빠르게 보수화, 문약화 되어 버린 금은,
이제 열살 남짓한 테무진이 뛰어다니는 몽골초원과 남송에 신경쓰느라 고려를 침입할 여력이 없었기에, 조위총의 사신을 그냥 고려로 압송해 버렸다.
대신에 해적인지는 모르겠으나 금나라의 배 백여 척이 동해 쪽으로 침입하여 노략질을 했다고 한다.

아무튼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된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남쪽에서는 망이, 망소이의 난이 일어났다
공주의 명학소에서 숯을 구어 먹고 살던 망이와 망소이는,
고려의 신분 질서가 흔들리고 잦은 변란으로 사회의 혼란이 지속되자,
기회라고 생각하였는지 굶주린 무리들을 모아 봉기하였다.
향, 소, 부곡은 그 기원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신라 시대부터 존재했던 유구한 전통의 천민집단으로서,
주로 전쟁 포로, 유민, 반역자의 자손들을 모아 살게 한 마을들을 그렇게 불렀고, 
반란이 일어났던 지역을 통째로 강등시켜 만들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 주민들은 신분은 양인이나 천민처럼 살아야 하는 신세였다.
두 망망이들이 거지떼들을 모아 일으킨 반란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시달리던 주민들의 호응을 받아,
전통적 요충지 공주를 점령하고 이어 예산현까지 위협하는 기염을 토하였는데,
조정의 정중부 일당은 조위총에게 진을 다 빨려 진압할 능력이 없었는지,
명학소를 말 잘 들으라는 뜻의 충순현으로 승격해주고 수령을 파견하여 회유하였다.
얻을 것을 다 얻은 남쪽의 두 망망이들이 잠잠해지자,
서경 공략군도 힘을 냈는지 두경승이 인육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던 평양성을 공격하여 깨뜨렸고,
조위총을 잡아 효수하였다.
나라에 막대한 해악을 끼쳤고, 정중부를 실권자로 만들어 주기도 하는 등, 
실로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던 조위총의 난은 2년 만에 해결 국면으로 넘어갔으나,
남쪽은 사정이 달랐다.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이 인간의 일반 심리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비열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비열함이 이미 생리가 되어 버린 조정의 무신들은 천한 놈들에게 굴복했던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었던지, 상황이 좀 편해지자 반란의 주동자들을 잡아 처벌하고자 하였다.
두 망망이들은 당연히 길길이 뛰었고 재 봉기하였으나,
북쪽을 해결하여 한 숨 돌리게 된 조정은 대군을 동원하였고, 
봉기군은 잠깐 기세를 올린 것을 끝으로 결국 진압되고 말았다.
충순현으로의 승격은 없던 일이 되었고, 항복한 두 망망이는 청주목에 수감 되었다는데,
마치 녹두장군의 운명을 보는 듯하여 애잔하다.

어찌 되었건 긁직한 반란을 두 건씩이나 해결한 정 중부 도당들은 이제 마음 놓고 권력을 탐하였는데, 이미 고희를 넘긴지 몇 년 된 정 중부는 남 보기에 좀 그랬는지 치사를 하여 막후 조정자로 물러앉았다.
따라서 조정의 권력은 이의방 살해의 공신인 아들 정 균과, 장인과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정중부의 사위 송유인이 나누어 행사하게 되었다.
일종의 세대교체를 한 것인데, 그래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권력의 남용과 부정부패는 더 심해졌고 서경 지역의 소요사태는 툭하면 일어났으며, 
전국적으로 도적이 들끓어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늙은 매부와 권력투쟁에 여념이 없던 정 균은 이미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마가 되어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국의 공주를 둘째 부인으로 삼겠다는 발칙한 그의 생각은 조야의 엄청난 역풍을 만났고,
청년 장수 경대승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경대승은 무사 30여명을 동원하여, 대궐에서 궁녀들을 희롱하다 자빠져 자고 있는 정 균을 살해한 후, 금군을 동원하여, 송유인 부자와 민가에 숨어 있던 정중부를 체포한 후 목을 따버렸다.
1179년의 일이었다. 
74년간의 정중부 인생, 참으로 영욕이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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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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