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5년 1월에 철수했던 놈들이 2월에 다시 내려와 개경에 진을 쳤고,
압록강 해안 지대에도 군대를 집결 시킨 후 8월부터 다시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이놈들은 낙동강 연안 일대까지 진출하였으며,
다음해에는 무등산에 진을 치고 전라도 남쪽까지 노략질 하였다.
군사적 대응을 포기하다시피한 고려는 사신을 보내 몽케를 설득하였고
몽골군이 서경으로 물러나면서 7차 여몽전쟁이 종료되었다. 1256년이었다.
7차에서는 해전도 있었는데,
정부군은 패배한 반면 지역의 해적들은 몽골 해군을 상대로 승리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비참 지경에서도 고려의 집권자 최항은 강화도에서 풍악을 울리며 잔치를 벌였고,
반대파를 참수하였다.
고종은 공신호를 하사하고 벼슬을 높이고 식읍을 가봉하고…열심히 최 항의 지랄에 장단을 맞췄고.
덤 앤 더머가 따로 없었다.
애비가 하던 짓을 그대로 따라하며 나라를 착실히 말아먹던 최 항은 1257년,
8차 침입이 있기 직전 병이 들어 뒈졌다.
애비를 닮아 글재주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