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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2월 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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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최 우의 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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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이 호라즘 정벌을 떠나던 1219년, 최충헌은 풍악 소리를 들으며 저승사자에게 끌려갔는데,
그의 치밀한 성격은 죽을 때도 여전하여 아들에게 야심가들의 준동을 경계하였다고 한다.
덕분에 최 우는 최준문 등의 암살 시도를 피하고 대통을 이을 수 있었으나,
만만치 않은 동생 최 향이 건재했고,
어느덧 이십대 후반에 도달한 고종 또한 그동안 못했던 왕노릇을 하고 싶어 했으므로,
최 우는 우선 몸을 낮추고 선정을 베풀어 조야의 인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다.
2—3년 분위기 파악을 한 최우는,
1222년 아버지처럼 아우를 제거한 후 각종 관직에 올라 집권자의 면모를 갖추고,
성을 수축하고 흥왕사에 거액의 시주를 하였으며, 문신들의 등용 폭을 확대하는 등,
신질서에 의한 통치를 시작하였다.
평화 시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무장들은 그게 불만이었는지 문신들을 척살하여 제 2의 난세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최 우는 최충헌의 아들답게 이를 사전에 탐지하여 저지하였고 끝까지 고집부리는 놈들은 죄다
도륙해 버렸다.
신품 4현에 속할 정도의 글재주와 정치적 감각 그리고 과단성까지 겸비한 최 우의 통치는
오랜만에 고려에 안정감을 부여하였으므로, 새로운​ 평화기의 도래를 예상할 수도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당시는 세계 역사상 최대의 변혁기였고, 그 변화의 주역 몽골이 문 앞에 당도해 있었다.​

​몽골은 강동성 공략전에서 고려와 처음 만난이래, 
무슨 구명지은이라도 베푼 듯이,
간도 지방에 자리 잡은 포선만노의 동진국과 고려를 틈만 나면 뜯어 먹었는데,
이러한 상황이 우리보다 동진국을 더 괴롭게 했는지,​
그들은 징기스칸이 서역에서 발목이 잡힌 틈을 이용하여, 몽골과 단교하였고
고려와 함께 몽골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난처해진 최 우는 전통적인 등거리 외교를 펼 수밖에 없었고, 몽골은 고려에 사신을 직접 파견하였다.
이때 사신으로 온 놈이  저고여였는데,​
이 놈은 악덕 지주의 싸가지 없는 마름처럼 무례와 억지가 도를 넘었고, 횡포가 심하여 조야의 원망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당시의 만주 정세는, 매년 몽골의 침공을 받아 사망 직전으로 몰린 금나라의 발악과, 동진국의 발호로
정신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위험천만한 길을 지네 두목 쌈 잘하는 것만 믿고 거들먹거리며 지나다니던 저고여는,
징기스칸이 끔직한 대학살을 자행하며 호라즘을 정복하고 서하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던 1225년, 고려에서 삥을 왕창 뜯고 돌아가다가,
압록강 부근에서 웬 비적 같은 놈들의 칼에 맞아, 죽고 말았다.​
흉수가 밝혀지지 않은 이 사건은 고려와 몽골의 국교단절 사태로 이어졌으나,
아직 금나라의 숨통이 붙어있었고 서하 또한 으르렁거리고 있었으므로 몽골의 직접 침공을 부르지는
않았다.​ 

​​자택에 정방을 설치하여 인사권을 장악하고 정무를 보고 있던 최 우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 애비를 닮아 나라의 운명보다는 자신의 만수무강에 훨씬 관심이 많았고, 당장 전쟁이 일어날 상황
또한 아니었으므로,
징기스칸이 말에서 떨어져 죽던 1227년, 서방을 설치하고 도방을 강화하여 자택을 제 2의 조정으로
만들었으며,
총애하던 점쟁이 최산보가 희종 복위를 꾀하자, 희종을 강화도에서 교동도로 옮기는 한편 그 연관자들 수십 명을 도륙하였다.
그리고 뭔 공인지는 모르겠으나 공신이 되었다.

고려를 완전 장악한 최 우는 그제야 북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군사력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는데, ​지 애비처럼, 정규군이 아닌 사병집단인 도방을 대폭 확충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훈련도 시킬 겸,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민가 수십 채를 헐어 대규모 격구장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최 우가 나름의 준비 아닌 준비를 하던 1231년 드디어 운명의 몽골 침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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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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