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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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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노비출신 집정 김 준, 몽골의 9차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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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였다.
초명은 인준, 최 우의 가병이었고, 벼슬을 받은 후 셀프 작명으로 김 준이 되었는데,
면천 후, 옛 주인 최 우의 첩과 사통하였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므로 최 우는 뭐 주고 뺨 맞은 꼴이었으나,
이미 싫증이 났던 첩이었는지 아니면 김 준을 아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김 준을 죽이지 않고 곤장 50대에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 하였으며, 말년에 다시 불러 최 항을
보좌하게 하였다.

최 항 시대의 김 준은 최양백과 더불어 정권의 양대 실세였는데,
최 항이 죽고 최 의가 집권하게 되자, 친위군 대장인 최양백에게 밀리게 되었다.
이에 열받은 김 준은 최양백을 횃불로 지져 죽이고 최 의의 목을 따,
최가의 60년 무단정치를 끝장내버렸다.
최 의를 죽인 김 준은 고종의 무한 감사와 함께 공신호를 하사 받았으나,
신분적 한계 때문인지, 쿠데타 주동 세력들을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하여, 문신 류경의 집권을 막지
못헸다.
그리고 몽골 놈들이 또 초상난 지 한 달 만에 고종의 출륙과 입조를 요구하며 침입하였다.

몽골의 요구에 당시 집정이었던 류경은 예전처럼 고식적인 방법으로 대응을 하였고,
몽골군 또한 노략질을 시작하였는데,
이번에는 자랄타이가 끌고 온 병사가 적었는지 아니면 고려 군민들에게 요령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전과 달리, 전국 각지에서 저항을 만나 뜻대로 남진하지 못하고,
경기도와 서해도 그리고 강화도 연안 일대를 공격하는 데만 집중하여,
강화도에 틀어밖혀 권력 투쟁에 날새는지도 모르는 밥버러지들을 긴장시켰다.
그런데 류경 정권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권력 강화와 부정축재에만 몰두하였으므로,
김 준은 문신 독주에 불만을 가진 각군 지휘관들을 비롯한 무신세력의 동의를 얻어,
류경이 대몽 강화와 대몽 전쟁 지휘에 모두 실패한 무능한 자라며 탄핵하였다.
그러나 류 경이 한 짓은, 잘한 짓은 아니었으나 이전 최가들과 별 차이가 없었고,
또 딱히 별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이는 단지 문신 류 경의 집권에 불안을 느낀 무신세력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만들어 낸 구실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한평생 무신들에게 시달렸던 고종이 이번에도 무신들의 손을 들어 주며 왕정복고의 기회를
날렸기에,
김 준은 비로소 집정이 될 수 있었고,
별수 없는 선택이긴 했으나, 1259년 3월, 왕의 출륙과 입조를 조건으로 몽골과 강화를 맺음으로써,
길고도 길었던 28년 간의 몽골과의 전쟁을 마무리한 집정이 되었다.

6차 침입부터 고려를 전담했던 자랄타이는,
태자가 입조하기 위해 몽골로 출발하고 강화도의 성을 철거하는 것을 보고야 군대를 철수시켰는데,
철수하는 도중 갑자기 뒈졌다.
인생의 마무리가 고려 침입이었던 셈이다.
자랄타이가 죽고 두 달 후에 고종이 죽었고, 그 두 달 후엔 몽케도 죽었다.
이들이 저승에서 만났다면 할 말들이 많았을 것이다.

1260년, 원종이 즉위한 후,
이전의 무신 집권자들 처럼 대망의 벽상공신이 된 김 준은 각종 관직에 올라 명실상부한 권력자가
되었으나,
자파 세력이 김 준이 노비였던 시절부터 기세가 등등했던 무신들이었기에, 절대 권력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집단 지도체제의 얼굴마담 수준의 권력밖에 갖지 못했던 김 준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몽항전을 지속하였으며, 삼별초의 난보다 11년 앞서 제주도 천도를
기획하기도 하였는데,
그러나 이는, 어짜피 권력도 없겠다, 입조든 뭐든 한 목숨 보존하면 그만인 왕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것이었으므로, 결국 갈등으로 이어졌다.
계급투쟁이나 평등사회 같은 사상이나 고상한 이념과는 인연을 맺을 수도, 맺을 의지도 없었던 김 준은,
역대 모든 무신 권력자들 처럼,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발버둥쳤고, 자연스럽게 부정부패로 연결되었는데,
이는 같은 욕망의 노예들이었던 쿠데타 동지들의 반발을 불렀고,
결국 원종의 이간책에 말려, 궁궐에서 양아들 임연의 몽둥이에 타살되었다.
1268년이었다.

김 준은 이의민에 이은 두번째 오리지날 천출출신 집권자였다.
최 항과 최 의도 어머니가 각각 창기와 여종이었으므로 종모법에 따라 천출임이 분명하지만,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았기에, 바닥부터 출발한 이의민이나 김 준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따라서 김 준의 성공은 어쨌든 인간 승리임에는 틀림없는데,
쿠데타의 명분이 왕정복고와 개경환도였기에, 일을 처결하는데 형식적이나마 왕의 동의가 필요하였고,
권력의 기반이 약해 이전 집권자들처럼 마음대로 숙청을 하지도 못하였으므로,
최가들처럼 무단 독재를 할 수도,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도 없었다.

풍채가 늠름하고 천성이 관후하였으며 아랫사람에게 공손하였고,
또 궁술과 무예에 능했고 남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해서 여러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다고 하는데,
불쌍하게도 노비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더불어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을 갖지 못해 비명횡사하였다.
그래도 10년이나 집권하였으니 개천에서 용난 셈이었고, 나름 보람찬 인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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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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