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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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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수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무리수, 삼각비, 통계의 역사

▲ 공부가 싫어 [사진=픽사베이]

[수완뉴스=곽동주 기자] 어려운 수학 개념과 복잡한 수학 문제에 파묻혀 수학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며 원망했던 적이 있는가? 단지 성적과 입시 때문이라면 다 같이 공부를 안 하면 안 되겠냐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가? 당신에게 필요한 글이 바로 이 기사에 있다. 수학은 그저 숫자 놀이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 아니다. 당장 쓸모 없어 보이는 수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견되었는지, 현재는 좋은 교육 환경 속에서 마음껏 배울 수 있는 수학을 발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이루어졌는지 알게 된다면 독자들도 분명 수학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중학교 3학년 수학 교육 과정에 등장하는 무리수, 삼각비, 통계가 탄생한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 무리수의 역사 : 히파수스 [사진=곽동주 기자 디자인]

기원전 5세기경, 피타고라스 학파는 우주의 근본은 수이며 만물은 정수와 분수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의 굳건한 믿음 속에서 다소 위험한 생각을 가졌던 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히파수스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피타고라스와 그 제자들이 모여 수학, 과학, 철학 등을 연구하던 학파이다. 당시 그들은 유리수 이외의 수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으려 하였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피타고라스의 제자들 중 한 인물인 히파수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하여 피타고라스 학파의 믿음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의견을 내놓는다. 밑변과 높이가 1인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길이에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적용하여 √2라는 숫자를 발견하고, 이는 정수나 분수로 표현할 수 없는 숫자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은 이 이론에 경악하며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믿음을 부정하기 싫었던 피타고라스는 이 수를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지시하며 ‘알고로스(침묵의 수)’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히파수스는 많은 제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외부에 알렸고,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만 공유되던 수학적 정리들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하였다. 히파수스는 피타고라스 학파 중 한 명에게 살해당했다 혹은 바다에 던져져 생을 마감했다 등의 설이 있지만, 무리수의 발견으로 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학자로 기억되고 있다.

▲ 삼각비의 역사 : 아리스타코스, 히파르코스, 알 바타니 [사진=곽동주 기자 디자인]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아리스타르코스는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최초로 계산하였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코페르니쿠스보다도 이전에 지구의 자전과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을 생각했던 지동설의 선구자였다. 그는 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를 계산하기 위해 지구에서 보았을 때 달이 정확하게 반달이 되는 때를 기다렸고, 이때 지구를 중심으로 달과 태양 사이의 각도를 측정하였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sin, cos, tan 같은 기호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아직 체계적인 이론이 적립되어 있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는 삼각법(삼각형의 변과 각의 관계에 대한 수학)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개기일식 때 지구 위의 두 지점과 달 위의 한 지점을 잇는 선 사이의 각도를 구해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를 계산했다. 천문학에 필요한 삼각법의 공식과 현표(각에 대한 현의 길이를 나타내는 표)를 만들고, 삼각법을 이용해 일식을 예측하는 방법을 최초로 개발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행성이 시간에 따라 얼마만큼의 각도로 움직였는지 알아내어 이동한 거리를 계산하고, 그 행성의 궤도나 크기를 구하는 것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알 바타니는 이슬람의 천문학자로, 삼각법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천문학에서 삼각법을 정식으로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sin의 재미있는 유래가 생겨난다. 알 바타니는 그의 책에서 sin을 ‘jiba’라고 불렀는데, 원래 jiba는 별 뜻 없는 아랍어였다. 이 단어가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잘못 옮겨져 ‘길의 커브, 주름, 꼬불꼬불한 길’ 등의 의미를 가지는 라틴어인 ‘sinus’로 번역된다. 이후에는 이것이 영어 ‘sine’으로 변하여, 오늘날 우리가 ‘si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통계의 역사 : 랑베르 아돌프 자크 케틀레 [사진=곽동주 기자 디자인]

국가가 세금을 부여하고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목적을 위해 호적이나 토지대장을 만들어 통계를 작성한 것은 예로부터 있었던 일이다. 근대의 통계는 19세기 초 유럽에서 성립되었으며, 이때부터 인구의 정확성이 구축되어 갔다. 통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은 벨기에의 통계학자이자 천문학자, 기상학자인 랑베르 아돌프 자크 케틀레이다.

케틀레는 1835년 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다. 인구통계와 범죄통계를 연구하여 도덕현상이나 범죄현상 같은 무질서해 보이는 사회현상에 있어서도 일종의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였다. 케틀레는 월, 지역, 기온, 시간별 출생률과 연령, 직업, 지역, 계절, 장소에 따른 사망률을 조사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하여 계산한 끝에, 한 사회에서의 출생률과 사망률 등이 매년 거의 일정하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기존에는 천문학 등의 자연과학에 이용되던 통계학이 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사회와 관련된 논문을 두 차례 더 발표하고, 생물이 나타나는 현상들을 분석하는 학문인 생물통계학을 개척하는 등 다른 학문과의 융합을 통해 통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케틀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853년 국제통계학회를 조직하고 국제통계회의를 개최하는 등 통계를 보급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무궁한 노력을 하였다. 이렇게 케틀러를 비롯한 여러 통계학자들의 노력에 점차 근대 통계학이 성립되어 갔다.

19세기 중반 선진국들의 통계제도는 꽤 정비되었으며, 통계의 대상 또한 인구·범죄에서 폭을 넓혀 산업·무역도 포함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특히 사회문제가 중요시되어 가계조사 등의 통계까지 등장하였고, 20세기에 들어와 선진국들의 통계는 더욱 강화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가는 경제 등 국민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개입해야 했으며, 이에 따라 각종 통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계들은 국민경제(국가를 단위로 하여 종합적으로 파악한 경제 활동)를 알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확립되었고, 통계의 체계가 특히 경제를 중심으로 확립된다.

▲ 수학은 우리를 싫어하지 않는다 [사진=곽동주 기자 디자인]

교과서 한 페이지에 적혀있는 어렵게만 보이던 이론들이, 오랜 시간이 걸려 발견되고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발전해나간 이야기를 읽어 보았다. 이에 비하면 지금 배우는 수학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수학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여전히 수학은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기사에서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 수학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말이다. 이제 수학 문제를 풀 때 수학을 발견한 인물들을 떠올리면서 조금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수학을 만든 이를 미워하진 않을 것이다. 수학의 표면은 어렵고 이상한 학문으로 비춰지지만, 이제 그 내면에 들어있는 지혜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래서 수학을 배운다.

열심히 수학을 공부하는 독자들을 응원한다!

곽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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