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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8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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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2대 남해 차차웅, 위기관리

차차웅 혹은 자충은 중의 이두식 표기로서 무당을 의미하므로 신관이라는 이야기이다.
고대에 신관은 매우 존경받는 직종으로 초기 부족 시대에는 부족장을 겸하기도 하였으나,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정치에서는 손을 떼고 고유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아무리 신라가 후진적인 사회였다고 해도 명색이 국가인데,
무당이 왕 노릇을 했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어찌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기록을 보면
남해 차차웅은 박혁거세의 장남으로, 죽을 때도 신화스럽게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서기 4년, 왕위에 올랐는데, 즉위하자마자 낙랑의 침입을 받아 금성이 포위되는 위기를 겪었다.
즉위 3년째에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의 묘를 세웠고,
즉위 5년에 석탈해를 사위로 맞아들였으며, 2년 뒤에 대보로 삼아 군사와 국정에 대한 일을 맡겼다.
즉위 11년에 왜구와 낙랑의 침입이 있었고.
즉위 16년에는 북명에서 예왕의 인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즉위 21년째인 24년에 죽어 사릉원에 장사지냈고,
그 외엔 자연 재해에 대한 기록이 다수이다.

남해 차차웅은 박혁거세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박혁거세 치세 말기 두 마리의 용이 출현했다는 기록이나 왕과 왕비가 거의 동시에 사망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왕의 시체가 토막 난 기사 등으로 미루어 극도의 혼란이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고,
이로 인하여 일종의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이때 제 세력들을 중재할 수 있는 위치인 신관으로서 남해 차차웅이 추대되었다.
그런데,이러한 불안한 상황에서 낙랑이 쳐들어오고, 자연 재해가 덮치고 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고상한 신관 나으리는 결국 문제의 인물 석탈해에게 정권을 맡겼고,
그에 의지해 겨우 겨우 왕 노릇을 하였다…. 정도의 스토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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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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