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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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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최충헌의 시대, 개막

아버지가 상장군이었고 외할아버지도 상장군이었으므로 최충헌은 귀족이었다.
무신이 별 볼 일 없던 시대였으므로 음서를 통해 문신의 길로 들어섰는데,
문벌 출신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하위직을 전전하는 신세였다고 한다.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22살의 어느 날,
무신 정변이 발생하여 가뜩이나 짜증나던 문관 생활이 아예 주홍글씨가 되어 버리자,
미련 없이 무관으로 전직해 버렸는데,
이번엔 정변 참가자가 아니었기에 무반으로서의 삶도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나마 변란이 자주 발생하는 격동의 시대를 만난 덕에,
조위총 반란 진압 작전에서 이의민이나 두경승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두각을 나타내었고,
이내 별장으로 승진하였으며, 지방관을 거쳐 경상 진주도 안찰사까지 될 수 있었다.

지방관으로서 그는 서리들에게는 엄격하고 백성들에게는 너그러운 모범적인 목민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앙 행정이든 지방 행정이든 난맥상의 극치를 달리던 시절이었으므로 이러 저러한 굴곡은
피할 수 없었고,
그 와중에 경주에 연고가 있는 이의민과 원한을 맺게 되었는지, 탄핵을 받아 군대에 복귀하였는데,
하필 당대 집권자의 눈 밖에 났으니 출세는 물 건너갔고, 4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고작 섭장군직을
받았다고 한다.
나름 뼈대 있는 집안 출신에, 문신으로 출사할 정도로 유식했던 최충헌은,
일자무식의 천출들이 활개 친 이의민의 통치 13년을 분노와 우국의 심정으로 보내야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울분의 세월을 살아야 했던 사람이 최충헌 하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196년 최충헌이 48살이 되었을 때, 운명의 비둘기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의민의 개차반 아들 자영이 평민도 아니고 당당한 귀족의 일원인 최충헌의 동생 충수의 재산인 비둘기를 강탈하였고,
이에 열받은 충수는 자영을 찾아가 거칠게 항의한 모양인데,
이의민과 최충헌의 구원이 작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영은 직위가 있는 귀족을 봐주지도 않고 볼기를 때린 후 이틀간 가두었다고 한다.
충수가 받은 이러한 수모는 당시 비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귀족출신 무신들의 공분을 샀을 것이고
최충헌에게 힘을 주었을 것이나 쿠데타의 전 과정이 자세히 전해지지는 않는다.

최충헌은 동생과 함께 경남 합천까지 내려가 미타산 별장에서 쉬고 있던 이의민의 목을 베었고,
백존위의 도움으로 군사들을 지휘하여 가병들을 동원한 이의민 아들들의 저항을 분쇄하였으며,
숨어 있던 자영을 색출 처단하였다고 한다.
이의민의 목이 저자거리에 효수되었다는 소식에 개경 인근의 사찰에서 봄놀이를 즐기다 혼비백산하여 귀경한 명종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늘 하던 대로 승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정변을 성공시킨 최충헌은 자영의 기첩인 전설적인 미인 자운선을 취하여 전리품으로 삼았고,
이의민의 삼족을 멸하여 그가 살았던 자취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고자 하였다.
천민 출신인 이의민에게 천대를 받아야 했던 분노가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천민들의 영웅 이의민은 역사의 기록처럼 그렇게 형편없기만 한 지도자는 아니었던 듯하다.
허수아비든 뭐든, 고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명종이 그에게 여전히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고,
그의 막역지우인 두경승 또한 건재했으며,
천민 출신의 병사들이나 관료들도 은인이나 다름없던 이의민에게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최충헌은 예전 선배들이 한 짓을 되풀이 하여,
반발을 하거나, 할 위험이 있는 인물들을 모조리 주살해 버렸다.
출사했던 천민 출신들은 씨가 말랐을 것이다.​

​본격적인 정권 확립에 나선 최충헌은 명종에게는 봉사 십조를 올려 폐단의 시정과 임금의 반성을 촉구하였다.​
봉사 10조를 보면 구구절절이 훌륭한 문장이요 공자님 말씀이라 반박할 여지가 없지만,
정상적인 왕정기에도 제대로 안 되던 것들인데, 평생을 허수아비로 일관하였고 자질 또한 형편없었던 명종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요구였다.
건의한 최충헌도 그저 명분을 위한 것일 뿐, 별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정권을 잡은 최충헌은 선배들처럼 가는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구악을 멸하고 새 시대를 열겠다는 쿠데타의 명분상,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한 거물 두경승을 속임수로 잡아 섬으로 귀양을 보내었고.
이의민과 달리 왕의 재량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최충헌에게 반발하는 명종도,​ 별 힘은 없어도 구시대의 상징이므로,
왕이 연로하여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궁색한 이유를 들어 폐위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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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기자
김경순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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